토스의 조직문화는 '좋은 조직문화'일까?
현대자동차그룹 HMG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2021년 10월 Core Value Talk 사이트에 게재한 글입니다.
요즘 금융앱(app) 주로 어떤 거 쓰세요? 2020년 8월부터 2021년 9월까지의 데이터를 조사했는데, 은행 서비스 부문에서 가장 사용량이 많은 앱이 '토스'였다고 합니다. 카카오톡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베이스로 하고 있는 카카오뱅크보다도 사용자 수, 사용시간, 사용일수 모든 지표에서 앞서는 것을 보고 저는 조금 놀랐는데요.
2015년 2월 간편송금 서비스 토스를 시작으로 금융업계에 뛰어든 비바리퍼블리카는 2018년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는 유니콘 기업이 되었습니다. 2021년 2월 오픈한 토스증권에 이어, 10월에는 토스뱅크가 정식 출범하면서 금융업계가 긴장하고 있는데요. 토스는 금융 서비스를 시작한 지 6년만에 한국 핀테크 산업을 선도하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창업자 겸 CEO인 이승건 대표는 자신들의 핵심 성공 요인은 '기업문화'라고 이야기합니다.
“주변에 회사원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행복하게 일하고 있지 않더라고요. 그 많은 것들의 원인이 조직 구조, 일하는 방식, 문화에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저희 구성원들 모두는 그것이 정말 심각한 문제이고, 그걸 우리가 풀어야 된다는 것에 강하게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즈니스의 성공뿐만 아니라 기업문화의 성공도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 2018년, 스타트업 미디어 EO 인터뷰 중
토스는 인간은 누구나 일하기를 좋아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들만 모두 걷어 내주면, 때론 자기 몸을 망칠 정도로 일을 하는 게 인간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래서 개인고과가 없고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과 복지를 제공합니다. 인사정보를 제외한 회사의 모든 정보를 직원들에게 오픈하고, 강한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해 높은 수준의 업무 자율성을 끌어냅니다. 구성원들이 다른 고민없이 자기 업무에 있어 ‘풀스윙’을 해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업문화가 토스의 성공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조직문화를 연구하는 국민대 김성준 교수는 많은 기업들이 문화를 전략 수행의 수단 정도로 이해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비이성적, 감정적 요소인 조직문화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수립된 회사의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 통제되어야 할 골칫거리 같은 존재라는 오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이지요.
그는 ‘조직문화가 전략을 낳는다’라고 주장합니다. 전략부터 세우고 문화를 가꾸는 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잘 가꿔진 조직문화가 좋은 전략을 낳고, 선택하고, 자라게 한다고 말합니다. 앞서 살펴본 토스의 조직문화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들 역시 자신들에게 문화란 생존 전략인 동시에 승리 전략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만 그럴 듯해 보이는 뜬구름 잡는 무엇이 아니라, 일을 잘 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죠.
덕분에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조직문화라고 하면 업무와는 조금 동떨어진, 직원들의 1차원적인 만족과 안락감을 위한 것 정도로 이해해왔었거든요. 조직문화를 편하게 일하기 위한 분위기나 환경 정도로 생각하는 것과 회사의 성공을 견인하는 전략적인 무기로 이해하는 것. 둘 중 어떤 관점이 기업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쯤에서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토스의 조직문화는 ‘좋은 조직문화’인가요? 그들의 문화와 성공 스토리를 듣고 나면 ‘나도 저런 회사에서 한 번 일해보고 싶다’라거나, ‘우리 회사도 저렇게 되면 좋겠다’같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하지만 토스의 내부 사정은 그렇게 단순한 것 같지 않은데요. 토스의 전현직 직원들은 회사의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봤습니다.
<긍정 코멘트>
직원이 마음껏 업무적으로 시도하고 과감한 도전을 해볼 수 있도록 회사가 서포트 함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해준 회사
국내 탑 연봉을 경험할 수 있다 (전 직장 대비 최대 1.5배 계약)
다 쓸 수 없는 무제한적 복지 (무제한 연차와 재택근무, 식대/야근교통비/교육비 100% 지원, 1억 무이자 대출)
복지가 정말 좋은데 그것보다 더 좋은 건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최고
<부정 코멘트>
워라밸이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는 최악의 직장이 될 수 있음
새벽 내내 슬랙이 울리고 답변해야만 하는 환경 (슬랙: 토스 사내 메신저)
자율적으로 몰입해서 일한다는 홍보영상 보면 헛웃음 나옴
주변 사람 눈치를 보게 만들어서 피로도가 높음 (개인고과가 없는 대신 무임승차 방지를 위한 동료평가 존재)
태어나서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한 최초의 직장 (함께 일하기 어려운 동료로 세 번 찍히면 퇴사 권고
아주 적나라하죠. 장점이 명확하지만 적응이 어려워 불만을 토로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회사도 이런 반응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이승건 대표는 토스가 뾰족한 지향점이 있는 기업인만큼 그들이 일하는 방식과 문화에 동의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회사의 비전에 절실하게 공감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그들의 방식에 동의하는 사람만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인 것이죠.
“토스 팀에서 일하는 방식이나 문화는 모든 사람에게 맞는 방식의 문화는 아니거든요. 훌륭한 동료들과 일하는 데에서 자극을 받고, 시장에 혁신을 만들고, 동료들로부터 존경받는 그런 것들이 직업적인 안정성을 갖고 안락하게 살고 큰 퇴직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는 그런 직장생활보다 훨씬 더 가치가 큰 사람들이 모여 있어요.”
- 2018년, EO 인터뷰 중
문화를 이해하는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 간에 우열이 존재한다고 보는 절대주의와, 모든 문화는 고유하고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보는 상대주의입니다. 조직문화의 대가 에드거 샤인은 문화 우열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옳은 문화와 옳지 않은 문화, 또는 우등한 문화나 열등한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조직이 어떤 문화를 추구하고 주위 환경이 어떤 문화를 허용하는가에 따라 바람직하거나 그렇지 못한 문화로 결정될 뿐입니다.”
누군가는 토스를 꿈의 직장이라고 얘기하지만, 누군가에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불행한 직장이기도 합니다. 특정 기업의 문화를 좋다, 나쁘다 정의하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시대적인 필요와 사회 보편적 가치로부터의 허용, 그리고 조직의 고유한 문화에 동의하는 내부 구성원들의 지지가 뒷받침되어서 성장하고 생존하는 문화와 그렇지 못한 문화가 있을 뿐입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직장 내에서 개인의 가치를 존중받고 싶어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시행에 코로나 대유행까지 겹치면서 사회적으로도 집단 보다는 개인의 가치에 더 힘을 실어주는 모습인데요. 많은 회사들이 수평적인 분위기, 워라밸과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구성원은 집단에 그저 적응하고 헌신해야 하는 존재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문화는 주위 환경으로부터 허용 받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회사와 개인이 유례없이 대등한 관계에 놓여있는 지금이 우리가 조직의 문화를 왜곡없이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집단의 가치가 절대적으로 우세했던 과거의 직장문화 속에서 개인은 ‘나’를 지켜내기에 바빴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개인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지지해주고 있는 지금은 전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회사의 문화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제는 기업이 오랜 시간 만들어온 문화와 교훈까지도 '라떼'나 '꼰대'같은 단어들로 묶어서 쉽게 폄하하기 보다는, 그 안에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신념과 가치가 내재되어 있는지 한 번쯤은 진지하게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요.
이번 칼럼을 쓰던 중에 마침 저희 회사 로비에서 정주영 선대회장의 20주기 추모 전시가 열렸습니다. 따로 시간을 할애해서 여러 번 걸음을 멈춰가며 전시된 모든 사진과 글귀, 영상들을 관람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는 이런 이야기에 신경 써서 귀 기울여본 적이 없었습니다. 너무 솔직한 얘긴지 모르겠지만 왠지 세뇌당하는 것 같아서 싫었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몸담고 있는 이 회사가 어떤 신념 위에서 태동했는지, 조직이 지난 수십년간 성공을 경험하며 꾸준히 강화해온 문화와 가치는 무엇인지 진지하게 살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주는 울림이 있는지 스스로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본 적 없었던 저에게는 어색하고 어설프지만 의미 있는 시도였습니다.
회사에 변화를 요구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연봉과 워라밸로 대표되는 외재적인 보상에만 치우치거나 잘나가는 IT기업의 문화를 기준으로 삼는 모습이기 보다는, 우리 조직의 문화가 가진 고유한 가치를 회사가 설득력 있게 제시하도록 만드는 데에 무게가 실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 아래에 자율적으로 모인 구성원들이 회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문화가 수단이 아닌 전략으로서 기능하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조직문화’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인이 겪는 여러가지 현실 앞에서 오늘 제가 드리는 이야기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문화에 대한 이해가 상대적인 것처럼, 삶에서 일과 직장이 갖는 의미도 개인이 처한 맥락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요. 그래도 한 번쯤은 같이 고민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안의 내재적인 동기와 회사의 문화가 지향하는 가치를 끊임없이 견주고, 필요한 목소리를 내고, 접점을 찾아보는 과정 끝에, 내가 기꺼이 동의하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런 조직문화를 만나는 경험을 우리 모두가 해볼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누구도 아닌 철저하게 ‘나’의 행복한 직장생활을 위해서 말이죠.
저 역시 그 과정 중에 있습니다. 이렇다 할 방법론이 없는 부족한 글이지만, 조직문화라는 주제를 한 번쯤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영감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한 책과 콘텐츠
책 「조직문화 통찰」, 김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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