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일기

나쁜 일은 더 나은 것으로

by 광현

아, 오늘도 새벽 기상에 실패했다. 글 써야 하는데. 책 읽어야 하는데.


일어난 시각은 6시 11분. 오늘은 아내가 차를 쓰기로 해서 셔틀버스를 타야 하는데 시간이 빠듯하다. 세수하고, 머리에는 물만 대충 묻히고 급하게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아파트 단지 한복판까지 나와서야 사원증을 두고 나온 걸 알았다. 근데 시간이 없다. 하루 불편해도 어쩔 수 없지 뭐.


셔틀버스 승차장까지 가는 시내버스가 눈앞을 지나간다. 그래 걷자. 요즘 운동이 부족하니까. 빠르게 걸으면 셔틀 탈 수 있을 거야.


절반 이상 즈음 왔을까, 별안간 오른쪽 바지 주머니가 묵직한 게 느껴진다. 왼쪽 주머니엔 핸드폰, 후드티 앞주머니엔 에어팟 케이스. 그럼 오른쪽은 뭐지?


... 차키다.


분명 선반 위에 놓인 걸 보고 오늘은 아내가 차를 쓰는 날이라고 한 번 곱씹었더랬다. 근데 왜 여기 들어있는 걸까. 너 대체 어떻게 따라온 거니??


"여보, 내일 까먹고 차키 가져가면 안 돼~"


잠자리에 누울 때 아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전적이 있었다. 집에 돌아가서 두고 와야지 어쩔 수 없다. 오늘 참 안 풀린다 안 풀려.


10분 넘게 걸어온 내리막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한숨을 한 번 푹- 쉬고 마음을 다잡는다. 저물어가는 가을 풍경을 꾸역꾸역 눈에 담고, 좋아하는 카더가든의 노래를 귀에 꽂고 나만의 휴식시간을 만들어본다. 살면서 좋은 일은 그 자체로 두고, 나쁜 일은 더 나은 것으로 바꾸라는 어느 소설가의 말을 떠올리면서.



집에 도착했다. 두툼한 후드티 속으로 미지근한 땀기운이 느껴진다. 차키를 내려놓고 못 챙겼던 사원증을 목에 걸었다. 그래도 얻어가는 게 있네 하하하... 하아...


보고 듣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메모장을 열었다. 시내버스를 기다리며 이렇게 일기를 한 편 뚝딱 썼다. 요즘 머릿속이 머리카락 잔뜩 낀 욕조 배수구처럼 갑갑하던 참이었다. 좋은 일은 아니지만 생각을 한 번 시원하게 쏟아내고 나니 조금 머릿속이 가벼워진 기분. 썩 나쁘지 않네. 이 정도면 더 나은 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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