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의 평가/보상 제도 변화와 채용 브랜딩
일전에 사내 칼럼으로 토스에 대한 이야기를 썼더니 팀 동료가 나에게 "토스 가고 싶어?"라고 물었다. 혼자 상상을 해 본 적도 있는데 쉽게 "그렇다"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다. 매일 오후 5시에 퇴근하고, 야근은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 할 정도의 워라밸을 누리고 있는 내가 사무실 불이 안 꺼져서 '역삼의 등대'라고 불리는 회사에 적응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물론 토스 생각 먼저 들어봐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일에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그들의 철학에는 깊게 공감한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월급쟁이는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일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존재니까.
게다가 토스가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너무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물론 내부 사정을 다 알 순 없지만 그들의 이야기에서는 보기 드문 투명함과 선명함이 느껴진다. 내가 토스의 목소리에 자꾸만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올해 11월부터 토스의 평가/보상 제도에 대대적인 변화가 생겼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3개월 리뷰 탈락과 *스트라이크 제도가 폐지됐다. 직원들이 눈치를 보게 만들어 사내정치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조직 안팎에서 있었던 제도다. (*토스에서는 함께 일하기 힘든 동료에게 스트라이크를 줄 수 있었다. 세 번을 받으면 회사에서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해당 인원에게 퇴사를 권고한다.)
2. 기본 연봉에 모든 수당을 포함하는 '포괄임금제'에서 주 40시간 이상의 근무에 대해 별도 수당을 지급하는 '비포괄임금제'로 전환한다. 포괄임금제에서의 계약 연봉이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Wow포인트였다)
3. 앞으로 금요일에는 전사가 오후 2시에 퇴근하고,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연말까지는 겨울방학이라는 이름으로 긴 휴식을 갖는다. 토스의 휴가 제도는 무제한 자율이지만, 남다른 성과를 내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는 직원들이 많다 보니 장기적 성장을 위해 회사 차원의 개입을 결정했다.
더 구체적인 내용은 토스피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토스 코멘터리 6. '역삼의 등대'에서 '꿈의 직장'으로
조직이 인재를 끌어들이는 경쟁력을 채용 브랜드(employer brand)라고 한다. 위 내용을 발표한 이후 채용팀에 접수되는 이력서의 수가 많이 늘었다고 하니, 토스는 이번 변화로 채용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강화한 샘이다.
HR 컨설팅 전문가인 김성남 님의 책 「수평 조직의 구조」에서 이야기하는 채용 브랜드 구축의 세 가지 요건과 함께 토스의 이번 변화 내용을 살펴보려고 한다.
과장된 브랜딩은 들통나기 쉽다. 특히나 요즘처럼 블라인드나 잡플래닛 같은 기업정보 공유 플랫폼이 활성화되어 있는 환경에서는 직원이 거기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라도 하면 오히려 회사 이미지가 크게 실추될 수 있다. 입사자가 채용 전에 가지고 있던 기대치와의 괴리로 조직에 실망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된다.
토스의 행보에는 일관성이 있다. 이 점이 그들의 채용 브랜드에 신뢰를 더한다.
스트라이크 제도를 폐지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이들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해갈지 너무 궁금했다. 개인고과가 없는 토스에서 동료평가는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토스는 채용 과정을 고도화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앞으로는 인터뷰 횟수와 시간이 2배 이상 늘어날 수 있음을 예고했다. 내부 직원을 감시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무임승차 걱정이 없고 적극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좋은 인재를 선발하는 데에 회사가 더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직원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그들의 신념을 강화하는 토스 다운 해결책이다. 인간은 선하며 일하기를 좋아한다고 믿는 토스의 기본 가정이 결코 허울뿐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대외적으로 한 번 더 증명했다.
사실 토스는 채용 브랜딩에 있어 솔직할 수밖에 없는, 솔직해야만 하는 회사다. 토스의 성공 전략은 그들의 문화에 최대한 부합하는 인재를 뽑아 자율과 책임을 중심으로 높은 몰입과 성과를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장된 브랜딩은 그들의 문화에 대한 오해를 낳고, 결이 다른 사람을 불러들인다. 회사는 그런 지원자들을 거르는 데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하고, 걸러지지 않고 채용된 인력은 조직에 들어와 기존의 문화를 흐린다. 그래서 토스는 솔직할 수밖에 없다. 일 할 사람이 부족하니 일단 매력적인 브랜딩으로 사람부터 뽑자는 식의 운영은 토스에게 오히려 독이다.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회사가 될 수는 없다. 회사가 제공할 수 있는 가치는 무한하지 않기 때문에, 조직이 필요로 하는 유형의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요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토스는 창업 초기부터 자신들의 조직문화와 인재상을 단단하게 다져온 회사다. 그래서 채용 브랜딩에 있어서도 그 타겟을 정확하게 조준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승건 대표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토스가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 꾸준하고 일관되게 설명해왔다. 자신들이 일하는 방식과 문화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변화 내용에 대한 인터뷰 끝에도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마지막으로 명확히 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나는 절대 주 40시간을 넘겨 일하지 않겠다. 회사와 나는 계약 관계일 뿐이니, 적당히 심리적 거리를 두고 시키는 것만 하고 싶다'는 분들은 여전히 토스팀과 맞지 않을 거라는 점이에요.
반대로 '나는 더러 야근을 하더라도 일에 몰입하고 성취하는데서 행복을 느낀다. 내 업무 강도와 방식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토스는 분명 이상적인 조직일 겁니다. 이런 분들이 바깥에 계시다면 어서 토스팀에 합류해주세요."
- 토스피드 인터뷰 중
외부에서 토스의 조직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표현들이 몇 가지 있다.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의미의 '역삼의 등대', 일을 많이 시킨다는 의미의 '원양어선', '직원들이 회사 붙박이 가구' 같은 것들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일과 삶의 양립을 어필하고 있는 시대에 토스는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조직이다. 그들은 일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일과 삶의 분리'라는 지금의 워라밸 개념은 일에서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 직장인의 좌절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토스는 정량적인 워라밸을 보장하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일에 몰입하는 경험, 동료들과 함께 목표를 성취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업무환경을 만드는 데에 집중한다. 그들이 일하는 방식과 문화 자체가 다른 기업들과의 큰 차별점이다.
토스의 차별점으로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과 복지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돈으로 인재를 끌어들이는 방식은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한계가 있다. 실제로 한 글로벌 조사에 따르면 기업을 선택한 이유 다섯 가지로 급여와 복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응답자가 41퍼센트에 달했다고 한다. MZ세대가 취업시장의 주류를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외재적인 보상보다 개인 가치관과의 적합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시각화된 컨텐츠보다는 장문의 아티클 중심으로 소통하는 방식 또한 토스의 독창적인 브랜딩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다. 토스피드에는 토스의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자세하게 공개한 아티클이 100여 건이 넘는다. 토스의 강력한 문화와 철학을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하는 인재들이 조직에 합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를 위한 설명과 설득에 있어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써 내려간 글보다 더 효과적인 도구가 있을까.
앞서 세 가지 요건을 살펴봤지만, 결국 채용 브랜드의 핵심은 일하기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구글이 2014년 한 해 채용한 직원이 약 6천 명인데, 지원자가 무려 3백만 명이었다고 한다. 구글은 세계 최고의 인재들과 좋은 기업문화 속에서 함께 성장하며 일할 수 있는 직장이다. 이미 일하기 좋은 곳으로 정평이 난 조직은 그 자체로 강력한 채용 브랜드를 가지게 된다.
토스의 이번 변화는 구직자라면 누구나 혹할 만큼 매력적이지만, 정작 토스는 그저 외부에 잘 보이기 위해 이번 결정을 내린 게 아니다. 조직의 현상을 진단해 유효성이 줄어든 제도는 폐지하고 더 필요한 제도는 도입했다. 그리고 그 의사결정의 맥락과 기준을 솔직하고 자세하게 외부에 공개하고 있을 뿐이다.
토스는 직원들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치열하게 고민하고 변화하는 조직이다.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만으로 토스가 일하는 방식에 동의하는 인재들을 향한 브랜딩이 된다. 어쩌면 브랜딩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어색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항상 잠재적인 구직자로 살아가는 나 같은 월급쟁이에게 자신들의 문화를 선명하게 정의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회사들이 많아진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의 숙제도 명확해진다. 내가 일하고 싶은 방식, 나와 어울리는 문화의 상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 관점에서 살펴본 채용 브랜딩의 세 가지 요건은 직장을 선택하는 개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과대 포장하지 않고, 부족한 점은 채우고 탁월한 점은 더 날카롭게 다듬어가며 구직자로의 투명하고 선명한 브랜드를 가질 수 있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 우리에게 꼭 맞는, 또는 조금 다르더라도 기꺼이 행복하게 맞춰갈 수 있는 그런 조직을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참고자료>
- 책 「수평 조직의 구조」 김성남 (북저널리즘)
- 토스 코멘터리 6. '역삼의 등대'에서 '꿈의 직장'으로
- 휴가 무제한, 고과·보고 없는 토스 “자유 주면 영웅이 나온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