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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현 Dec 06. 2021

삼성전자 인사제도 개편 리뷰

한국 대기업도 수평조직이 될 수 있을까?


     지난 11월 29일, 삼성전자가 인사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방식의 수평적인 조직 문화 구축을 위해 1. 연공서열 타파, 2. 성과관리체제 혁신, 2. 인재제일 철학 실천을 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예전 같으면 그냥 대기업들 맨날 하는 얘기 아닌가 하고 지나쳤을 텐데, 이번 소식은 예고 기사를 보고 발표를 기다렸을 만큼 관심이 갔다. 단순히 그냥 남의 회사 일로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출처: 뉴스웨이


   '실리콘밸리처럼'의 의미


     제도 변화 내용만큼 관심이 갔던 건 언론에 공개된 이재용 부회장의 미국 출장 사진이다. 실리콘밸리 주요 회사의 경영진들과 회동하면서 앞으로의 인재육성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삼성전자 정도의 네임벨류를 가진 회사면 대놓고 누구 따라 하겠다는 말은 못 할 것 같다. 대신 사진을 통해서 구글처럼, MS처럼 변하겠다는 지향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우)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좌)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실리콘밸리처럼 변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수평적인 문화라고 하면 그저 상사와 부하직원이 정서적으로 친밀하고 편한 상태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단순히 '분위기'를 넘어서 '일하는 방식'에 있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지향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권력 분산'이다. 수평조직에서는 의사결정 권한을 관리자가 독점하지 않는다. 전문성 있는 구성원들이 자기 업무에 대한 의사결정을 자율적으로 내릴 수 있는 조직이 수평조직이다.


     조직 내 의사결정과 관련해 사전에 합의된 방식을 '조직 거버넌스'라고 하는데, 수평조직은 아래와 같은 거버넌스를 가진다.


1) 전문가 중심의 분산된 결정
실무 결정은 실무자가, 거시적/중장기적 사안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여 관리자가 결정

2) 조직 전반의 목표 공유
권한이 분산되어도 결정의 일관성이 유지되도록

3) 투명한 공유
의사 결정 근거와 결과를 모두가 열람할 수 있어야 업무 중복 방지, 앞선 실수에 대한 보완 가능

- 책 「수평조직의 구조」 김성남


     분산의 대상과 정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삼성전자가 지향하는 모습도 위와 같은 거버넌스를 기본으로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수평조직에 필요한 두 가지


     넷플릭스는 높은 전문성을 가진 인재에게 극도의 자율성을 부여해 성과를 창출하는 회사다. 수백만 불의 시나리오 입찰을 담당자 혼자 결정하는 일이 흔하다고.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이 같은 자유와 책임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1. 인재 밀도 구축

높은 전문성과 협업능력, 자율성과 윤리의식을 가진 직원들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 애초에 규정과 통제가 필요 없는 인재들로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다.


2. 솔직한 피드백 문화

재능 있는 구성원들 간의 솔직한 피드백은 더 일 잘하고, 책임 있는 선택을 하는 조직을 만든다. 직원들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규정과 감시는 필요성이 줄어든다.


     위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수직적인 보고절차와 규정들을 하나씩 제거할 수 있게 된다. 관리자는 지시와 통제가 아닌 맥락으로 리드하고, 직원들은 스스로 몰입해 높은 성과를 창출한다.


     삼성전자는 기본적으로 제조회사이기 때문에 넷플릭스만큼의 권한 분산은 어렵겠지만,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위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개편안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세부 항목들을 인재 밀도 구축과 솔직한 피드백 문화 정착 두 가지 기준으로 분류하고 주관적인 해석을 덧붙여봤다.


출처: 뉴스웨이


1. 인재 밀도 구축

- 임원 직급(부사장/전무) 통합

- 직급별 표준 체류기간 폐지 및 승격 세션 도입

- 시니어 트랙(우수인력 정년 후 근무) 제도 도입

- 상대평가 방식 절대평가 전환


     부사장과 전무 직급이 통합되고 직급별 체류기간이 없어지면서 40대 사장, 30대 임원 발탁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수인력은 정년 이후에도 근무할 수 있다. 연공보다 능력이 대우받은 문화는 조직 내에 우수한 인재의 밀도를 높이기 위한 기본 바탕이다.


     상위 10% 직원만 최고등급 평가가 가능하고, 나머지 90%는 절대평가를 적용하기로 했다. 내가 생각하는 절대평가 도입이 갖는 의미는 두 가지다.


     1) 수평조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인재 밀도의 정비가 필수적이다. 지향하는 문화에 어울리는 태도와 성과를 보이는 직원이라면 예외 없이 선택하고, 그렇지 못한 직원은 과감하게 배제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2) 수평조직은 위계에 의한 지시와 통제가 아니라 우수한 인재들 간의 협업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직원들의 성과를 수치로 환산해 줄을 세우는 스택 랭킹(Stacking Ranking) 방식은 동료와의 과도한 경쟁을 유발한다. 절대평가 도입은 경쟁의 대상이 동료가 아니라 시장이 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번에 이재용 부회장이 찾아간 마이크로소프트도 2013년부로 상대평가를 폐지한 바 있다.


2. 솔직한 피드백 문화

- 직원 직급/사번 정보 삭제

- 동료평가 ‘피어(Peer) 리뷰’ 시범도입

- 부서장-직원 상시 협의 ‘수시 피드백’ 운영


     인트라넷에 직급/사번을 표시하지 않고 상호 높임말을 공식화해 나이와 연공을 기준으로 한 위계를 최소화했다. 직원들이 대등한 관계에서 솔직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적인 특성상 직설적이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쉽게 주고받는 국가가 있고 그렇지 못한 곳이 있는데, 한국은 후자다. 피어리뷰, 수시 피드백과 같은 공식적인 제도와 구체적인 지침은 직설적인 의견 교환에 서툰 조직이 피드백 문화를 활성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거점 오피스와 사내 자율근무존 운영은 기본적인 업무 환경과 관련된 낮은 수준의 통제 제거로 보인다. 이번에 도입한 제도들을 통해 수평조직에 어울리는 인재 밀도와 솔직한 피드백 문화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면, 직접적인 업무 수행과 관련된 통제와 규정을 본격적으로 완화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야, 너두 수평조직 할 수 있어


     삼성전자에 자주 붙는 수식어 중 하나는 '재계 맏형'이다. 주로 회사의 규모와 위상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지만, 그에 걸맞게 한국 대기업 집단의 조직문화 변화도 앞서서 주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반바지 착용을 허용한 건 2016년, 기존 사원~부장 5단계 직급을 4단계로 축소한 건 2017년이다. 유연하고 창의적인 문화로 바뀌기 위한 기초 제도들의 시행이 내가 다니는 회사보다 2~3년 정도 빨랐다. 물론 조직마다 맞는 시기가 있겠지만, 삼성전자가 먼저 길을 터주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런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 방식으로 바뀌겠단다. 조직문화를 공부하면서도 수직적인 문화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전문가들의 말에 100% 공감하진 못했었는데, 삼성전자의 이번 발표는 나처럼 변화의 가능성과 필요를 의심하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너네도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야, 너두 수평조직 할 수 있어


     요즘 ‘이미 온 미래’라는 표현을 많이들 쓰더라. 조직문화에 있어서는 수평조직이 그렇지 않을까. 여전히 팀장님의 지시에 따라 일하고, 실장님과 본부장님 입맛에 맞는 단어들을 고민하며 보고서를 서너 번씩 수정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수평적인 문화는 이미 옆에 와 있는 미래 인지도 모른다. 지나가는 직장인이 남의 회사 소식을 이렇게까지 유별나게 톺아보는 이유다.






<이전에 쓴 글>

- 직원이 회사를 바꿀 수 있을까?

- 그들이 원하는 인재를 모으는 방법

- 월급쟁이의 필수교양, 조직문화


<참고한 기사와 책>

- 이재용 ‘뉴삼성’ 위해 실리콘밸리식 인사제도 도입... 연공서열 없앴다

- 일하는 문화부터 바꿔라…이재용, 실리콘밸리식 조직문화 승부수

- 삼성전자, 인사제도 개편안 핵심은 ‘성과·수평’···이재용의 ‘뉴삼성’ 스타트(종합)

- '죠스바'부터 '반바지'까지..삼성전자 근무복 변천사

- 삼성전자 대리·과장·부장직 없앤다

- MS “더 이상 등급 없다” 인사 상대평가제 폐지

- 책 「수평조직의 구조」 김성남(북저널리즘)

- 책 「규칙 없음」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 (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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