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앞당기는 성숙한 인재
구글, 넷플릭스, 토스 등과 같이 문화적인 성공을 이룬 회사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재 밀도(talent density)’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들은 업무적인 전문성 뿐만 아니라, 회사가 제시하는 가치와 문화를 바르게 소화할 수 있는 성숙함까지 겸비한 비범한 인재들로만 조직을 채우는 것이 자신들의 혁신적인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필수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Hire Hard, Manage Easy.
그래서 그들은 채용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그 과정을 통과한 구성원들을 관리와 감시의 대상이 아닌 어른으로 대우함으로써 직원들이 자신의 일과 조직에 자율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높은 수준의 권한위임, 무제한 휴가, 예산 통제 폐지와 같은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회사의 결단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어요.
애초에 규정과 통제가 필요없는 인재를 뽑아라.
-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 책 「규칙없음」
토스는 구성원을 어른으로 대한다. 신뢰와 위임의 문화 속에서 역량을 펼칠 분인지를 채용 과정에서 확인하고, 이후엔 걸맞는 신뢰와 자율을 준다.
- 토스팀 이승건 대표, 중앙일보 인터뷰
만일 당신의 팀이나 회사를 완전히 바꾸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면, 보다 나은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그 변화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 구글 전 CHRO 라즐로 복, 책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
문화적인 변화를 선언한 많은 회사들이 생각만큼 빠르게 바뀌지 못하는 이유 역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원들을 전부 새로 뽑지 않는 이상, 기존 구성원들과 함께 지향하는 문화에 걸맞는 인재 밀도를 내재화 해가는 느린 과정이 불가피한 것이지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인재일까?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의 변화를 하루라도 앞당기고 있는 구성원일까?
위의 회사들 중 한 곳의 일원이 되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나는 자율과 책임의 문화에 어울리는 인재일까? 조직의 관리와 통제에 익숙해진 내가 그런 곳에 잘 적응하고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꼬리를 무는 마음 속의 질문들에 ‘그렇다’는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교수님의 메일은 조직의 현상에만 주목하던 저의 시선을 제 자신에게로 옮겨주었습니다. 회사의 문화적인 전환에 있어 한 개인의 역할은 조직의 제도적인 변화가 빨리 이뤄지기만을 그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지향하는 문화에 어울리는 인재로 만들어가는데 집중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회사가 보다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모습으로 변화되길 바라는 구성원이라면, 조직이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각종 통제와 비효율적인 절차들의 무용함을 자기 자리에서 끊임없이 증명하고 동료들에게 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조직이 느끼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한 줌이라도 덜어주는 성숙한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회사가 하루라도 빨리 원하는 변화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죠.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습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넷플릭스나 토스처럼 무제한 휴가 제도를 도입하자고 하면 정신 나간 놈 소리를 듣겠죠? 하지만 팀 차원에서 좀 더 자율적이고 성숙한 휴가 문화를 제안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았습니다.
휴가를 쓴다고 딱히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는 조직입니다. 하지만 바쁘게 일하고 있는 팀장님을 찾아가 "저 내일 연차 좀..." 하는 상황은 왠지 항상 뻘쭘하게 느껴지곤 했어요. 좀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팀장님을 찾아가 휴가 사용 전에 팀장님께 대면으로 보고드리는 관행을 없애자고 말씀드렸어요.
대신 회사에서 쓰는 협업툴을 활용해서 팀 전체에 휴가 계획을 알리고, 필요한 경우 업무 유관자와 일정을 조율한 뒤 대면 보고 없이 휴가를 올리는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넷플릭스의 휴가 규정 폐지의 핵심도 결국은 서로의 맥락을 충분히 공유하는 구성원들의 성숙함이었으니까요. 더 나은 문화로 나아가기 위해 내딛는 작은 한 걸음이 되길 바랐습니다.
다행히 팀장님도 제안에 동의해 주셨고, 팀 동료들에게 메일을 썼습니다.
단순히 휴가를 편하게 쓰자는 것 이상의 문화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전해졌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팀에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 스스로에게는 분명히 그렇습니다. 조금씩 쌓여가는 이런 작은 경험들이 저를 자유와 책임의 문화에 어울리는 성숙한 인재로 단단하게 빚어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