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의 힘
“아빠 오늘 회사 가?”
모처럼 하루 휴가를 냈다. 평소와 다르게 출근 준비를 하지 않는 나를 보고 아이가 묻는다.
그냥 간다고 할까? 아빠랑 노는 게 제일 좋은 아들이라, 자기도 유치원 안 가겠다고 때를 쓸까 봐 걱정이 된다. 순간 고민했지만, 안 간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우와 신난다!”
아이는 다행히도 아빠가 버스를 태워주고, 하원 때 마중을 나와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쁘다. 역시 오늘도 솔직하게 말해주길 잘한 것 같다.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와 말이 통하기 시작할 때 즈음부터 부모의 솔직함이라는 것이 꽤나 중요한 주제가 되기 시작한다. 이런 것까지 얘기를 해줘야 할까? 그냥 적당히 둘러대고 말까? 하는 고민의 순간들이 자주 생긴다.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럴 때 솔직함을 고집하는 편이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표현이 있다. 육아에 있어서는 아마도 아이가 고집을 부리거나 울음을 터뜨릴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한 거짓말일 것이고, 여기서의 ‘선의’란 당연히 아이를 위한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의 정서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만 한 정말 극단적인 사건이 아니라면, 일상 속에서 부모인 우리가 아이에게 하는 거짓말의 대부분은 ‘편의의 거짓말’에 가깝지 않은가. 터진 울음 속에서 아이의 눈높이를 더듬어 찾고 설득하는 그 피곤한 과정을 피하고 싶기 때문은 아닌가.
물론 작은 거짓말로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고 평화로운 육아를 이어가는 것 역시 아이와 나를 위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솔직함을 통해서는 그것 이상의 본질적인 평화로움과 아이와의 건강한 관계를 세워갈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재택근무가 잦았다. 평소에 아이가 아빠와 노는 걸 너무 좋아해서, 처음엔 아이가 등원할 때까지 방에 숨죽이고 숨어있거나 차에서 일을 하다 아이가 없을 때 집에 들어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게 건강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회사를 안 가는 날엔 아이에게 사실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초반엔 아빠와 놀겠다고 때를 쓰며 우는 상황도 많았지만 결국 아이도 상황을 이해하고 조금씩 적응해주었다. 이제는 재택을 하던, 하루 휴가를 쓰던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는 것은 아이가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성장할 기회를 주는 일인 것 같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항상 떳떳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양육에 필요한 정서적인 수고를 크게 덜어준다. 아이를 설득하기 쉽지 않은 어떤 순간에 “아빠는 거짓말하지 않지.”라고 나 스스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육아를 해내는 데 있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물론 아이와 쌓아온 신뢰 덕분에 굳이 그런 이야기까지 해야 할 일이 잘 생기지도 않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평범한 일상에 한정한 이야기다. 혹시 고민의 순간마다 당장의 상황을 쉽게 모면할 수 있는 작은 거짓을 선택하고 있다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넉넉하게 성장할 나의 아이를 조금 더 믿고 기대해보는 것은 어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