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님의 책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없네'
실망감을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마우스 스크롤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연말 승진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2018년은 상사들의 관심이 집중된 TFT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주도했던 해였다. 개인적인 역량을 마음껏 펼쳤고 인정도 많이 받았다. 당시 본부장 님은 나를 보면 빛이 나는 것 같다고 ‘빛광현’이라는, 우스꽝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한 별명을 지어주셨다.
하지만 떨어졌다. 과장도 아니고 대리 승진, 직장생활 첫 승진이었다.
그날 저녁 팀장님은 소주를 따라주며 일찍 승진하면 집에 가는 날만 빨라진다고 말했다.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건가. 입을 한 번 꼬집어 주고 싶었다. “네가 떨어진 건 정말 말이 안 된다”는 동료들의 이야기가 고맙긴 했지만 마음을 달래는데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조만간 사원, 대리 모두 ‘매니저’로 통칭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내 직장생활에 이제 대리는 없구나. 사실 상관없는 일인데 괜히 더 씁쓸하다. 그다음 해 나는 1년 늦게 승진했고, 박광현 '매니저'가 되었다.
제 스스로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과 직장생활을 잘한다는 것 사이의 간극을 느끼기 시작한 건 아마 이때 즈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 거리를 상사와의 관계, 회사가 원하는 방식으로의 일처리 등을 통해서 좁히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왠지 저는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인정하지 않는다면 인정받지 않겠다'라는 이상한 객기를 품고 직장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면서 직장과 직업의 개념을 새삼 구분하게 됐습니다. 승진 누락으로 제가 품게 된 그 마음은 단순한 객기가 아니라,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에 가깝다는 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다른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통해서 지난번에도 언급했던, 리더십/조직문화 코칭 전문가인 김호 님의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라는 책을 만나게 됐습니다. 제목에 끌려서 바로 주문했어요. 꼭 저 읽으라고 만든 책 같았습니다.
한국의 직장인이 주된 직장에서 나오는 평균 나이는 49세라고 합니다. 일할 능력과 욕구가 충분하고, 여전히 수입이 필요한 시기에 직장에서 밀려 나와 하루아침에 월급이 제로가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지요. 책은 대다수 직장인이 겪게 되는 이러한 현실을 인식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저자는 그런 우리의 삶을 보호해주는 것은 직장이 아니라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직장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서 돈과 교환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개인기를 가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하지요.
각자의 상황에 따라 직장에서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무엇일 수도,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직업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직장을 다니는 목적과 태도를 다시 정의하고, 나의 직업을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시간과 에너지의 배분을 바꾸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설득이 되었습니다. 저도 직업인을 꿈꿔보기로 했어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읽었던 책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고, 저자의 여러 가지 조언들을 따라보려 애썼습니다. 지금도 진행형이고요.
물론 책이 정답을 알려주진 않았습니다. 직업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생각의 틀과 관점을 제시해주고 있을 뿐이지요. 저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을 교과서 삼아 제가 요즘 시도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천천히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저만의 답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결과야 어찌 됐든 저의 이런 몸부림에 대한 기록이 지금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