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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Dec 17. 2018

직업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하는 시대

Do What You Love. 가능한 걸까?


얼마 전 WeWork에 다녀왔다. 올해만 벌써 삼성점, 서울역점, 선릉 2호점 세 군데의 WeWork를 방문했고 그곳에 방문할 때마다 이런 문장(슬로건)을 마주쳤다. Do What You Love.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이 당연한 말이 요즘은 왜 이렇게 거창하게 느껴지는 걸까. 또 왜 이렇게 애틋하게 다가오는 걸까?


절대 안 붙이던 스티커를 붙이게 만든 문장. Do What You Love.


며칠 전 사고로 목숨을 잃은 한 청년의 유품이 오늘 많은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컵라면 3개와 과자 1개, 까만 석탄이 묻은 채로 남아버린 그의 가방 속 물건들만이 그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대변해주고 있다. 하청업체의 직원으로 홀로 밤을 새우며 공장을 지켜야만 했던 그는, 자신의 직업을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대책 없이 길어져 가는 백수생활을 어떻게든 끝내보려, 생계를 위해 선택한 일이었을 것이다.


주변에 있는 취업준비생들에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많이들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취업입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일화가 있다. 아마도 4년 전쯤 일이었을 것이다. 팀에 새로 들어온 후배와 밥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이런 질문을 했다. 원래 마케팅이 하고 싶었냐고. 꿈이 뭐였냐고.


후배의 대답은 간단했다. 취업하는 게 꿈이었다고. 그 대답을 듣고, 사실 난 좀 놀랐다. 그리고 실망했다.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취업이 꿈이었다고 대답할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힘들게 취업해놓고 후배에게 어떤 대답을 기대했던 건지.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마음이다.


5포, 7포를 지나 아예 이번 생 자체를 포기한다는 1포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내가 취준생이던 시절에도 취업은 바늘구멍 뚫기였는데 지금은 그 바늘구멍마저도 막혀 있는 것 같다. 취업이 안되니 연애도 결혼도 꿈꿀 수 없는 현실. 예전처럼 직업을 선택하는 건 비현실, 아니 초현실적 꿈일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SKY 캐슬>에는 부모의 직업인 '의사'라는 직업을 자녀에게도 물려주기 위해 혈안이 된 부모들이 나온다. 자식을 서울의대에 보내기 위해 집 한 채 값을 쓴다. 아이들의 재능은 무엇인지, 아이들이 정말 하고 싶은 건 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아이들에게 SKY  캐슬은 지옥이지만 부모들에게 SKY 캐슬은 뺏기고 싶지 않은 특권이고 천국 문인 것이다. 극 중 정형외과 의사인 강준상(정준호)이 후배 의사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장면이 있다.


"넌 왜 의사가 됐냐?"


후배의 대답 역시 간단하다. 엄마가 하라고 해서 의사가 됐단다. 엄마가 하라고 해서 의사가 된 그로 인해 정말로 의사가 되고 싶었던 누군가는 의사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건 돈과 권력을 쥔 부모들 뿐일지도 모르겠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일은 왜 이렇게도 어려운 걸까? 꿈꾸던 일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언젠가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할 거야.'라고 조심스레 다짐하고는 한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사는 직장인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친다.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인들은 취준생의 신분을 벗고난 뒤 다시 퇴준생이 된다. 올 한 해도 '퇴사'는 많은 관심과 이슈몰이를 한 키워드였다. 직장인들이 퇴준생이 되는 이유?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Do What You Love. 마지못해 취업을 하고 난 뒤 한숨을 돌리고 나면 다시 머리와 가슴에 찾아오는 말인 것이다. 이젠 평생직업이라는 게 없으니 언제라도 한 번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무모한 기대를 해본다.


나와 당신에게 바란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하겠다는 마음으로 꿈을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시대에 바란다. 취업이 아니라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우리가 사는 이 곳에서, 더 이상 열심히 일을 하다가 죽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또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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