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ucated
오랜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 한 사람의 생이 다가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억하기 위해 정직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막 40대. 삶이 길이라기보다 대지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미 무너져 패인 땅을 뒤로한 채 나무를 심고 또 심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꾸기를 여전히 꿈꾸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나의 땅 안에 있는 것임을. 앞으로 할 수 있는 일과 못할 일이 보다 명확하고, 혹은 어떤 변화를 위해서는 그 전에 못다한만큼 더 거센 엔진을 돌려야만한다. 이제 젊은이보다는 중년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삶은 이미 지켜야할 것들이 많다. 지난 시간동안 쌓아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할 무언가 만으로도 이미 하루가 금방 가는 데다가, 열심히 하루를 살고 나면 정말이지 저녁에는 다시 에너지를 투여할 여력이 그리 남아있지 않다. 그동안 나는 나의 대지에 어떤 숲을 쌓아왔을까. 그 중에 가장 높고 아름다웠지만, 꺾여버린 한 나무를 생각한다. 그것은 성 같기도 했고, 빛이기도 했고, 탄생이자, 만남이었다. 평탄하고 고르게 조금씩 자리를 일궈가던 나의 땅에 가장 큰 필지에 이제 막 뿌리내렸던 내 아이들. 무성해지기 전에 이제 막 새싹으로 연초록 빛깔을 가장 빛나게 솟아나던 아이들. 가끔 목마르고, 잡초도 피어났지만 , 그래도 건강한 숲으로 잘 자라던 나와 내 아이들의 들판.
educated 저자의 세상은, 그 누구보다 거친 숲이었다. 처음부터 중력이 왜곡되어있었던 그녀의 주변은 온통 거꾸로 자라 제멋대로 찌르고 엉키는 분노와 사랑, 폭력과 신비가 혼재하는 곳이었다. 다른 원리와 경험으로 움직이는 어린 그녀와 그녀 가족의 세상 이야기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산 속에서 공교육과 제도, 병원과 공공복지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과대망상 조울증에 빠진 아빠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오빠.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다른 형제들. 그리고 또 그 힘에 굴복하는 또 다른 형제들. 자녀들을 사랑하지만 신의 명령에 따라 돈을 벌기 위해 그들에게 목숨을 건 위험을 강요하면서 이 또한 하늘의 뜻이라 여기는 아빠. 그녀의 대지는 누구보다도 가장 거칠고 가파른 산맥과 절벽 투성이었다. 어떤 영화보다 충격적이고 현실적인 그녀의 이야기는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들을 통해 기억을 끊임없이 객관화 시키려하고, 각 성장과정에서 느꼈던 상황과 감정, 상태등을 지나친 자기애나 거리두기 없이, 내밀하고 솔직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읽는 내내 몰입도를 높여주었다.
누가 더 힘들까. 무의식적으로 생긴 못된 버릇이다. 전체적으로 평탄하지만(했지만) 한순간 끝을 모르게 깊이 파여파인 고통의 골짜기를 가지게된 나의 대지와 온통 그 자체로 산맥과 절벽이 가득했던 그녀의 대지 중에 누가 더 힘들까. 이제 이렇게 하지 않기로했는데, 비교를 통해 얻는 위안이 얼마나 값싸고 폭력적인 것인가. 그래도 너는 이러이러하니까 괜찮지 않니, 그래도 너는 누구누구보다는 나은 거야. 나를 위로하는 사람들은 곧잘 그렇게 말하곤 했다.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그때마다 화가났지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분노에도 의지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알량한 위로들이 마른 장작에 불씨처럼 자잘하게 부셔지면서 온통 나를 태웠지만,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내가 화를 내면 또 그들은 미안해하겠지. 그리고 결국 괜찮다라고 말해야겠지. 말하기 위해 또 이어지는 말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다시, 이런 내가 더 힘들까 아니면 그녀가 더 힘들까. 못된 버릇이다. 그렇게 비교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자꾸 생각한다. 왠만해서는 나를 이기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이번에는 잘 모르겠다. 분명히 그녀의 고통과 나의 고통은 다른 종류의 것이다. 나의 대지와 그녀의 대지는 토질자체가 다르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계속 생각한다. 누가 더... 억지로 생각을 끊어내고 이미 알고 있는 답을 다시 내건다.
고통은 함부로 비교할 수 없다. 오직, 이를 극복하는 태도와 방식의 차이를 알고 배울 수 있을 뿐이다. 그녀의 대단한 점은 자신이 처한 과거와 현재를 직시했다는 점이다. 물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을 할 수 없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나의 환경과 행동을 얼마나 타협하면서 말하는지. 하지만 진짜 삶을 살아내려면 해내야한다. 정직하게 억지로 나를 감싸고 위로했던 에어백을 치우고, 내 눈과 팔과 다리로 디디고 서야한다. 나의 대지를 바로 보아서 상태를 점검하고 가꾸어야한다. 이게 바로 그녀의 가장 멋진 부분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자신이 없다. 나는 지난 3년여동안 정말 멀쩡하게 살았다. 그 대신 너무 쉽게 남의 일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다. 조금만 슬픈 이야기, 약간만 신파조의 드라마만 봐도 눈물이 금세 고인다. 심지어는 누군가의 진로 이야기에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창피했다. 그들은 나를 눈물 많은 사람쯤으로 알고 있겠지만, 정작 메마른 내 대지는 쩍쩍 갈라지고 있다.
매년 초여름에는 어김없이 우울해지고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왜 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함부로 기억할 수는 없었다. 정말 포기해버릴 것 같았기 때문에. 나의 방식은 답을 정하는 것이었다. 멀쩡하기로 하자. 멀쩡하게 살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집중했다. 일단 사적인 나를 사회적인 나에게 최대한 기대기로 했다. 나만큼이나 자신의 방식으로 시간을 견디고 있는 남편이 있었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시간을 버티는 나를 보고 역시 조용히 걱정스럽게 함께 버티고 있는 나의 엄마와 남편의 부모가 있었다. 심정 약한 첫째인줄로만 알았는데 씩씩한 언니를 보면서 자신의 삶 또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걸 알고, 함부로 위로대신 옆에 있어주기를 택한 내 친구와 동료들이 있었다. 그냥 그들에게 멀쩡하기로 선택했다. 그들과의 관계에서까지 매번 아프고 슬퍼해야한다면 더 이상 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살기 위해서 일단 끝을 모르고 너무 크게 패여서 쩍 갈라져버린 내 대지의 골짜기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여전히 마르고 불안하지만, 아직은 들여다볼 용기가 없다. 사실 나는 아직도 그 상태이다. 달라진 건 없다. 문득 그녀가 부럽다. 그녀는, 결국 해냈구나. Educated 정작 나는 하나도 배우지 못한것 같다. 아, 비교하지 않기로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