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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Jan 12. 2022

뜻밖의 배려

내가 상대를 배려한 것 중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한 가지가 있다. 예전 직장에서 면접관의 위치에 있을 때였다. 그래 봤자 고작 다섯 명의 팀원이 있는 디자인 회사였지만.


채용사이트로 서류 전형에 통과한 면접자에게 회사 위치를  문자 메시지로 보낼 일이 있었다. 규모가 있는 회사가 아니다 보니 큰 빌딩도 아니고 주택가에 위치해서 찾아오기 불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회사 위치를 보내면서 텍스트로만 된 주소로만 보내지 않고, 지도 앱에서 주소를 입력한 후 링크를 복사해 전달했다. 보통 지도 앱 하나 정도는 휴대폰에 깔려있다고 생각했다. 혹시 멀라서 카카오 맵과 네이버맵 Url을 동시에 보냈다.


카카오나 네이버 둘 중에 하나만 깔려있어서 링크만 클릭하면 바로 열리니 편리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쪽 앱만 깔렸는데 다른 앱의 주소를 보내는 건 오히려 텍스트로 된 주소를 받는 것보다 오히려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글 앱까지 3개를 보내는 건 배려의 수준을 넘어 집착처럼 보일까 봐 그만뒀다.


이렇게 하게 된 이유를 따져보니 내가 예전에 면접을 다닐 때를 떠올랐기 때문이다.


회사 주소나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 봐도 그 회사의 면면이 보였는데, 참 가지가지였다. 최악의 경우는 손글씨로 주소 사진을 보내는 경우다. 1과 7 같은 애매한 숫자가 섞여 있을 땐 참 난감하기 그지없다.


명함을 찍어 보내주는 경우도 있었는데, 깨끗한 배경에서 선명하게 보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희한한 앵글에 심한 각도로 찍어 주소가 잘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명함 뒷면의 영문 주소를 보내 당황시키는 경우도 았었다. 분명 앞면은 한글일 것 같은데, 굳이 뒷면의 영어로 된 명함을 보내는 이유는 뭐였을까? 혹시 재미교포이신 건가?


어쨌든 사진으로 받으면 일일이 다시 타이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앞에 PC라도 있으면 괜찮지만, 휴대폰 화면으로 왔다 갔다 기억하고 외우면서 다시 입력하기를 반복하는 일은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여간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 메모장에 어렵게 타이핑했는데 잘못해서 지워지기라도 하면 쌍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도 있었다.


그나마 타이핑된 정확한 주소를 주면 좋은데, 그 주소가 도로명이 아니라, 구주 소명이면 지도 앱에서 다시 변환해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구주소와 함께 건물 지명을 보내면 자칫 잘못 찾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누구나 알만한 건물이 아닌 이상은 말이다.


그래도 가장 예뻐 보였던 사람은 지도 앱의 주소를 링크로 주는 경우였다. 이 얼마나 배려있는 행동인가 생각하며 회사에 대한 호감도도 급 올라갔다. 하지만 이것도 상대에서 카카오를 보내고 나는 네이버 앱만 깔려있다면 바로 보이지가 않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불편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면접자들을 배려해 카카오와 네이버 지도 앱의 두 개를 링크를 보낸 것이다. 이런 세심한 배려 하나가 우리 회사의 인상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걸 내가 면접자의 입장에 있을 때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반응이 좋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배려라고 생각했는지 면접자들이 고맙다는 반응들을 적극적으로 해줬다. 물론 그렇다고 채용으로 연결된 건 아니지만, 아마 회사에 대한 인상이 나쁘진 않았을 거다. 지금도 여전히 사무실을 찾아오시는 분들에게는 웬만하면 두 개의 링크를 보내고 있다. 요즘엔 거의 네이버 지도 앱을 쓰시는 거 같지만.


이런 게 진정한 배려 아니겠냐고 나름 혼자서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내가 했던 배려와는 비할 바가 아닌 엄청난 배려 인간을 만나고 혼자서 막 부끄러워진 일이 있었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정말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고 한동안 멍한 기분으로 정지해 있었다.


출근길 아침이었다. 평일 조금 늦은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와 정장 차림의 30대 남성으로 보이는 딱 한 분만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나는 서둘러 탔고 평소처럼 11층 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함께 탄 정장의 남성분은 머뭇 거리면서 지켜보고 있더니 층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당연히 나와 같은 11층이시겠구나 생각했다. 분명 내가 있는 같은 층의 공유 오피스의 새로운 입주자 일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1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그 남성분은 빠른 걸음으로 내리더니 엘리베이터 우측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나가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분이 비상계단을 이용한다는 건 내가 내린 11층이 아니라, 12층이나 10층에 사무실이 있다는 말이 아닌다. 만약 10층이셨다면 중간에 한번 더 멈추는 시간을 없애기 위한 나를 배려해서일 테고, 12층이라면 1층 정도는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그냥 걸어 올라가겠다는 생각 아니었을까 싶다.


분명 비상계단으로 가는 걸 내 눈으로 봤으니, 급해서 화장실을 갈리도 없지 않은가. 어쨌든 그날 그 엘리베이터에서 겪은 예상하지 못한 배려 때문인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1초라도 먼저 타도 내리려고 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정말 완벽한 배려란 저런거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과 환경까지도 생각한 굉장한 배려심이 아닌가. 내가 배려랍시고 했던 행동이 작고 부끄러워졌다.


안타깝게도 그분을 자세히 못 봐서 다시 만나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이제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한동안은 그분의 감동적인 행동이 계속 생각날 것 같다. 가끔은 나도 그분의 행동을 따라 하면서 혼자서라도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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