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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Jul 17. 2022

옥수수와 나이키

본질주의를 넘어 서기

여름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보통 수박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나에게 여름 대표 음식은 단연 옥수수다. 맛도 맛이지만 일단 먹는 재미가 솔솔하다. 손가락 끝으로 한알씩 뜯어 먹기도 하고, 절반을 쪼개 이 끝으로 정교하게 파먹기도 하고, 한입에 우걱 우걱 베어 물기도 하고 먹는 방법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 지루하고 느슨한 여름의 시간을 견디는 좋은 방법이다.


어렸을 적 한여름밤 시골 할머니댁 평상을 떠올려 보는 것도 큰 재미다. 그 곳에 누워 옥수수 알갱이처럼 쏟아지던 별 빛들을 얼굴로 받아내던 장면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총총히 박혀 있다. 이런 기억을 소환해 내는 것도 옥수수를 먹는 재미를 한층 더 하게 한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내 최애 간식도 옥수수다. 가끔 통감자 구이로 갈아탈 때도 있지만 1순위는 언제나 옥수수다. 시장을 지나갈 때도 모락 모락 김이 나는 옥수수 찜통을 지나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올 여름에는 그 맛을 집에서도 느끼고 싶어 올해 수확한 옥수수를 주문했다. 기대에 부풀어 삶았는데 내가 좋아하던 그 맛이 아니었다. 그냥 맛없는 탄수화물 덩어리를 씹어내는 느낌이랄까. 포만감은 있어도 맛의 즐거움은 전혀 없었다.


내가 삶은 옥수수는 뭐가 문제일까? 검색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옥수수 본연의 맛으로 내가 기대하는 맛은 절대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파는 옥수수 대부분이 ‘뉴슈가’라고 하는 인공감미료를 쓰고 있었다. 사카린이라고 불리는 이 합성화학물질은 설탕보다300배나 강한 단맛을 낸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하지는 않다고 한다. 집에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넣어서 내가 기대하는 맛을 내고 싶었다. 


아쉽지만 뉴슈가 대신 설탕과 소금을 섞은 물로 맛을 내보기로 했다. 다시 삶은 옥수수는 첫번째 실패했던 맛의 옥수수가 아니었다. 전혀 새로운 화학적 결합으로 만들어진 맛으로 재탄생한 옥수수였다. 거의 파는 옥수수 맛과 많이 비슷해졌다. 이렇게 몇 수푼의 재료로 이 정도로 매력적인 맛으로 변한다니 놀라웠다. 맛없는 탄수화물질을 질겅 질겅 씹어 내던 기분으로 멋던 게 이렇게 변할 수 있다니 !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 0.01프로 밖에 안되는 일이라면, 나는 그걸 기꺼이 희생하고 200프로 더 좋은 맛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마음은 아마도 옥수수 본연의 맛을 쫓는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옥수수 본연의 고소하고 밋밋한 맛을 즐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본질에 대한 집착으로 더 좋은 맛을 놓친다면 그것도 큰일 아닌가. 건강도 좋지만 맛없는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불만족스런 감정은 오히려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옥수수의 맛이 옥수수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옥수수의 맛을 좋게 느낀다면 옥수수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앞으로 옥수수를 찾게 될 가능성도 올라갈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옥수수라는 브랜드의 본질 주의에 대한 맹신은 오히려 우리가 옥수수라는 본질과 매력을 알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인체에 피해가 없에서 감미료를 넣는 건 괜찮지 않을까.


옥수수에 대한 본질과 맛에 대해 생각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브랜드가 있다. 바로 나이키라는 브랜드다. 나이키는 사람들의 운동을 위한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다. 그게 브랜드의 본질이다. 하지만 그  본질에만 집착했다면 나이키가 지금과 같은 브랜가 됐을까. 어쩌면  그 본질에 사람들이 더 잘 자연스럽게 잘 접근 하기 위한 노력들을 했다. 다양한 캠페인들하고, 나이키 러닝 같은 커뮤니티 구축하고, 운동복을 넘어 패션의 영역까지 넘나드는 디자인으로 감미료 같은 활동들을 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활동들에 적극적인 건 운동 본연의 맛을 내기 위한 집착하는 아디다스나 기타 여러 스포츠 브랜드들의 노력과는 비교된다. 


그렇다고 과연 이런 활동들이 나이키의 본질이라고 하는 스포츠 정신을 위배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이키 운동복을 입었다고 홈런을 더 치거나, 나이키 축구화를 신었다고 축구선수가 한골 더 넣는 건 아닐 것이다. 만일 그런 마법같은 기술력을 가진 제품으로 제품을 만든다면 사람들을 더 열광할까를 생각해보면 꼭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소비자들의 입맛에 맛은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더 즐겁고 흥미로운 스포츠 경험을 선사하는 것에 사람들은 브랜드에 더 매력을 느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본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내가 적당 양의 설탕과 소금을 넣겠다는 경정이 스포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스포츠 본연의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나이키다움을 강화하지 않았을까. 여전히 나이키는 운동을 더 맛있게 하는 레시피들을 개발하는데 여념이 없는 듯하다. 고객들의 취향과 연령대별로 더 맞춤화되고 다양한 맛들을 데이터를 통해 알아내고 있다.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나는 초복의 날씨다.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세번째 옥수수를 삶고 있다. 이번에도 두번째와 마찬가지로 적당한 설탕과 소금물에 삶아내고 있다. 해가 저물고 선선해지면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나이런앱을 켜고 동네 한바퀴를 뛰어 봐야겠다. 지금 고민하는 브랜드의 본질에 대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이제는 그 브랜드의 맛을 한층 끌어 올릴 마법의 가루가 뭐가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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