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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현수 Jul 18. 2022

잘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월등하지 못해 포기하는 것

제조업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작은 상품을 팔아 보면서 느낀 참 많았다. 그 이전까지는 마음만 먹으면 상품기획부터 유통까지 혼자서 다 할 수 있다 생각했다. 틀린말은 아니다. 낯설어서 그렇지 막상하면 다 할 수 있은 일이다. 그런데  왜 스스로 하지 않는지가 의문이었다. 제대로 된 상품을 만들려면 당연히 상품이 탄생해 고객에게 전달되는 모든 접점의 순간에서 내 손길이 닿아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해보니 그게 쉽지가 않은 일이라는 걸 금방 알게됐다. 상품 기획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브랜딩과 함께 제조까지 해내야하고 또 그걸 홍보, 마케팅한 후에 유통까지 한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비효율적이었다.  


각각의 영역이 성격도 너무 달라서 우리 회사가, 내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따로 있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왜 유통사와 제조사가 그렇게 따로 존재해야하는지, 제품 하나는 기가막히게 만들어내는 전문 제조사가 왜 브랜딩과 마케팅에는 그렇게 취약한지를 이해하게됐다.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정자도 멋지고 거기에 모인 사람까지 좋을 수는 없다는 옛말에 수백번 공감했다.


물론 시간과 비용을 쓰면 언젠가는 해결될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해결이 안된다면? 이미 시간을 들여 했는데 전문성을 갖춘 회사들에 비해 한참 떨어진 결과가 나온다면 어떨까? 비즈니스에 있어 시간은 곧 비용인데, 그런 확실하지 않는 결과에 막대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결국 무한정 쓸 수 없는 한정된 시간이라는 자원을 잘 이용하는 관점에서 보면 각각의 구간에서 최대한 빠르고 확실하게 일을 처리하는 게 훨씬 나은 결정이다.


제조 연구에 힘을 쏟아야할 제조사가 유통에까지 시간을 쓰다보면, 제조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유통사가 제조에까지 욕심을 내서 공장까지 지으면, 유통망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한다. 중요한 건 제품 자체인데 공장이 잘 굴러가는지 아닌지 인력 시스템에는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데 시간을 다 써버린다. 설령 제조와 유통을 다 완벽하게 잘 한다고 해도 브랜딩과 마케팅과 홍보라는 높은 산이 또 기다리고 있다. 그걸 간신히 넘어가면 다시 유통이라는 시간과 거리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이 모든 능력이 하루 아침에 생기길 바라는 건 정말 과한 욕심이다. 각 구간에서 잘하는 회사들도 그 능력이 어느 순간 갑자기 이뤄진 능력들이 아니다. 우수한 어느 제조업체는 그 수준의 제조력을 위해 평생을 받쳐 이뤄내기도 했을테고. 믿을만한 어느 유통업체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끝에 비로소 자신들만의 유통망을 만들었을 것이다. 최고 실력의 브랜딩, 마케팅 회사도 수많은 사례연구와 프로젝트 수행 경험이 쌓였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거다.


그런데 이걸 한번에 다 하는 게 가능하다고? 더구나 잘하기까지 한다고 ? 말이 안되는 얘긴데 몰랐을 때는 가능할 법한 시나리오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직접 만들고 팔아보기 전에는 말이다. 


수년 전 짧은 일정으로 도쿄여행을 갔었다. 긴자 골목을 한참 헤메다 우연히 백년된 돈까스집을 발견했다. 백년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힘에 이끌려 주저없이 들어갔다. 긴 바형태로 둘러싸인 가운데 공간에는 완전하게 개방된 주방이 있었다. 머리가 희끗한 주방장이 세분이 바텐더처럼 서서 손님을 맞으셨다.


그런데 보아하니 각자의 역할이 뚜렸했다. 한분은 주문이 들어오면 준비된 고기를 두드리고 잘 펴고 계셨다.


다른 한분은 그 고기를 받아 적당한 두께로 튀김가루를 묻혔다. 마지막 주방장은 그렇게 연결된 고기를 계속 튀기는 작업만 했다. 튀기는 시간을 체크하는 알람도 없었고 어떤 계량기도 없었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 적당한 만큼의 자신의 임무를 세분이 수행하고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 엄격해 보이는 절차와는 다르게 세분의 표정은 너무나 여유롭고 즐거워 보였던 게 정말 인상적이었다. 


완성된 돈까스가 저의 테이블에 놓이고, 바삭하고 촉촉한 상반된 질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코 속으로 는 고소하게 기분 좋은 육향이 함께 퍼졌다. 감동한 맛 때문이라도 세 분의 주방장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그 분들의 삶과 철학이 이 돈까스의 맛에 얹혀지니 경건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야말로 인생 돈까스라고 하기 부족함이 없는 맛이었다.


좋은 제품이 완성되는 과정도 이런 비슷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혼자서 다 할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잘 할 수는 없다. 물론 혼자서도 마음만 먹으면, 한다고 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오래가지 계속 하지는 못할 것이다. 할 때마다 온 힘을 다해 해야 할까 말까 할테니까 말이다. 그런식으로 하다보면 몇 번 하지 못하고 나가 떨어지고 말 것이다.


한두 작품을 끝으로 은퇴할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각자 잘하는 게 있으니 각 단계에서의 최선의 결과물을 모아서 최종으로 다시 모아 완성해내는 게 더욱 이상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브랜드에게도 사람에게도 시간은 무한정 주어지지 않는다.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해 고민해야한다. 그 방법 중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잘하는 걸 잘하는 사람이, 더 빨리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것만 남기고 평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건 더 잘하는 사람에게 더 완벽한 회사에게 넘기는 거다.


못해서가 아니라, 탁월하게 잘 하지 못해서 포기하는 거다. 평생을 걸고 하면 못할 게 뭐가 있을까? 그만큼의 시간을 열정을 가지고 쏟으면 안될 건 사실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자원은 유한하다. 그 안에서 내와 우리가 더 빨리 더 잘 할 수 있는 게 분명히 있다. 그건 내가 타고난 재능에서 찾을 수도, 내 주변의 환경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걸 계속해서 찾고 확인하고 키워가는 일이 비즈니스라는 그라운드 안에서 내가 계속 해야나가야할 임무가 아닐까 싶다. 나와 회사의 대체제가 없는 포지션을 찾을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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