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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Sep 12. 2021

짐승보다 못한 인간

흉악 범죄 기사를 접하고

요즘에는 사회면 뉴스 기사 보기가 겁이 난다. 제목만으로도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 예상되어 클릭을 주저하게 만든다. 특히 정인이 사건이나 친부인 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성폭행당하고 살해된 20개월 영아 등 어린아이들의 기사를 접할 때면 속이 울렁거리고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우리가 지켜주고 보호해야 할 어린 생명을 무참히 짓밟는 인간들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니! 통탄할 일이다.  


일각에서는 우리의 법제도가 느슨해서 흉악 범죄가 늘고 있다며 법규를 강화하고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형법 41조에는 법정 최고형으로 사형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1997년 12월 30일 이후에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국제 앰네스티는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폐지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97년이면 필자가 대학교에 입학한 해인데 왠지 갈수록 흉악하고 잔인한 범죄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느낌이긴 하다.    



우리는 흔히 인간성을 상실한 자를 일컬어 '짐승 같은 X' '개 같은 X'라고 한다. 하지만 뉴스면을 장식한 범죄자나 피의자들에게는 그런 수식어조차 아깝다. 버리고 간 주인을 그 자리에서 한없이 기다리거나 수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옛 주인을 찾아간 개의 사연을 들을 때면 배신을 일삼는 인간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뉴스에서 90세 할머니를 살린 백구 이야기를 보았다. 3년 전에 유기견이었던 백구는 빗속에서 40시간 넘게 쓰러져 있던 할머니 곁을 지켰다. 경찰이 드론을 이용해 열화상 카메라로 수색을 했지만 비로 인해 체온이 떨어진 할머니는 카메라에 감지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지키던 백구의 체온이 감지되어 할머니가 발견된 것이다. 또한 백구가 체온을 나누어주지 않았다면 고령의 할머니가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3년 전 자신을 살려준 할머니에 대한 은혜를 갚은 게 아닐까? 사람을 죽이거나 성적 욕망을 풀 대상으로 여기는 인간보다 백구 같은 동물이 백배 천배 낫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짐승을 빗대어 잘못 쓰는 말 중에 '늑대 같은 X'이라는 표현도 있다. 음흉한 남자를 일컬어 늑대 같다고 표현하는데 사실 늑대는 절대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평생 한 암컷만 두고 암컷이 죽으면 높은 곳에 올라가 구슬피 울다가 통곡을 한다고 하니 애처가라고 불릴만하다. 늑대 같다는 말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모르겠지만 잘못된 표현이다. 앞으로는 한 눈을 파는 남자들에게 '제발 늑대만 같아라'라고 주의를 줘야 할 것 같다.   



동물적인 본능과 욕구에만 충실한다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갈수록 그런 짐승보다도 못한 인간이 많아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최근 출소 3개월 만에 전자발찌를 끊고 두 명의 여성을 살해한 전과 14범은 '더 죽이지 못해 한'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친딸인 줄 안 상태에서 20개월 아이를 성폭행하고 벽에 던져 살해한 남성은 장모님에게도 잠자리를 제안했다고 한다. 이런 짐승보다 못한 인간에게도 과연 인권이란 게 있을까? 


인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인간답게 살 권리이다. 하지만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을 인권이라는 이름하에 보호할 필요가 있나 생각해 볼 일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의 탈레오 법칙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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