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e myself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류작가 강은영 Sep 28. 2021

나의 완벽한 실수

완벽이를 몰아내자!

자칭 타칭 완벽주의자였던 나는 다른 사람의 실수에는 매우 관대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무슨 사정이 있을 거예요" 라며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나한테만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항상 완벽해야 하고 뭐든지 잘해야 했다. 실수라도 하면 몇 날 며칠을 떠올리고 곱씹다가 "아!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라며 머리를 쥐어 뜯기도 했다.


다행히도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과 온라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완벽주의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완벽해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힘도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의도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모습,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이려고 노력한다. 세상에 실수라곤 없는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작지만 단단한 '완벽이'란 녀석이 존재한다.       



오늘 나는 제대로 실수를 저질렀다. 완벽주의에서 많이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 나의 실수가 용납이 잘 안된다.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한동안 망연자실한 채로 앉아 있었다. 새벽 5시부터 6시까지 명상과 필사를 하고 글을 쓰는 온라인 수업이 있다. 오늘이 둘째 날인데 눈을 떠보니 이미 6시가 지나 있었다. 오 마이 갓! 새벽 기상을 시작하고 처음 발생한 엄청난 일이다.


순간 휴대폰이 잘못되었나 의심했다. 작년에 바꾼 이 폰은 새벽에 업데이트 되느라 두어 번 정도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 하필 오늘이 그날이었다. 그동안 알람이 안 울려도 습관적으로 잘 일어났는데 오늘은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어젯밤 자기 전에 환기를 시킨다고 잠깐 문을 열어 놓은 것을 닫지 못해 감기에 걸린 것이다. 12시쯤에 일어나서 문을 닫고 3시쯤 일어났다가 한 시간만 더 자려고 누운 것이 이렇게 되고 말았다. 


열여섯 명의 참가자들한테 서둘러 문자를 보내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썼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말도 안 돼.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를 기다리고 걱정했을 분들에게 면목이 없어서 괴로웠다. 하필 문을 열었고 하필 두 번이나 깨어났고 하필 알람이 안 울렸다. 여러 우연이 만나 완벽한 실수를 만들어냈다.   


내 안에 있는 완벽이 녀석이 고개를 들었다.

완벽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업을 하는 사람이 안 나타나는 게 말이 되냐?

나: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네

완벽이: 대박이다.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래? 이건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나: 죽을 죄를 지었다, 내가


완벽이한테 계속 당하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나: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냐?

완벽이: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나는 용납이 안돼

나: 나도 알지만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어. 괴로우니까 그만 떠올릴래. 너는 이만 꺼져!


간신히 완벽이를 내보내고 언젠가 들었던 실수에 관한 명언을 떠올렸다. 검색해보니 '휴 화이트'란 사람이 한 말이다.


실수를 범했을 때 오래 뒤돌아보지 말라.
실수의 원인을 마음에 잘 새기고 앞을 내다보라.
실수는 지혜의 가르침이다.
과거를 바꿀 순 없지만
미래는 아직 당신 손에 달려있다.


그래, 이미 엎질러진 물! 이제 그만 뒤돌아보고 내일부터 다시 잘하면 된다. 이 기회에 날 괴롭히는 완벽이를 제대로 몰아내자. 남은 4일 더욱 정신 바짝 차리고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로 새기자. 오늘은 푹 잤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목이 아프고 왼쪽 귀가 멍하고 머리가 아프지만 약 먹고 푹 쉬면 금세 나아지리라. 나의 완벽한 실수담을 글로 풀어내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만약 내가 불로장생을 한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