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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류작가 강은영 Oct 31. 2021

남편이 없는 날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이 있다. 주로 몸이 피곤하거나 어딘가 아플 때다. 오늘 새벽은 왜 이리 졸립고 머리가 무겁지? 했더니 어제저녁에 맥주를 두 캔 마셔서 그런가 보다. 오늘이 그날이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이럴 땐 왠지 글도 쓰기 싫고 잘 안 써지니 편안하게 아무 말이나 해야겠다.  


남편 혼자 시댁에 김장을 하러 가서 두 아들과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남편이 없는 날은 대충 간단히 먹어도 되는 날이다.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 냉동실에 있던 치킨 너겟과 감자튀김을 에어 프라이기에 돌리니 고소한 기름 냄새와 버무려진 치킨, 감자 냄새가 절로 맥주를 찾게 했다. 느끼한 음식엔 역시 맥주지! 밥을 안 먹으면 괜찮아. 맥주 마실 구실을 만들어 시원한 맥주캔을 땄다. 크! 첫 모금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


맥주 캔은 금세 비워졌고 치킨과 감자는 남았다. 작은 캔이라 금방 마셨구나. 음식도 남았는데 한 캔 더 마셔야지! 또 구실을 만들어 하나를 더 땄다. 코로나 사태로 실직한 남편과 계속 붙어 있다 보니 혼자서 술을 마신 지가 까마득했다. 좋네 좋아.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자유인가! 남편이 있으면 좋은데 없으면 어째서 편안하지? 이 자유로움은 뭘까?


남편이 없으면 밥을 대충 차려줘도 되고 무엇보다 먹고 싶은 걸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어서 그런 듯하다. 나는 꽤 날씬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데 타고난 식탐이 강하다. 뭐든 잘 먹기도 하는 데다 음식 솜씨까지 갖췄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 지도 잘 알고 있다. 즉 먹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연애 시절부터 남편은 내가 뭘 먹으면 또 먹어? 뭘 그렇게 많이 먹어?라고 핀잔을 주었다.


이 남자는 내 배가 나오는 꼴을 못 본다. 연애 8년 반, 결혼 생활 16년을 함께 하며 이제는 눈치를 안 보고 마음껏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착각인가 보다.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먹는 자유를 뺏는 이유가 뭔지 언제 한번 진지하게 물어봐야겠다.


어쩌면 자유를 빼앗긴 게 아니라 스스로 예뻐 보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한 사람한테 아직도 잘 보이고 싶은 걸까? 배가 나오고 뚱뚱해져도 남편은 나를 사랑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여자로서 나를 좋아해 줄지는 의문이다. 이 남자의 취향이 그러하니 나쁘다, 잘못이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남편이 없는 자유로움은 오늘 새벽 피곤한 몸과 무거운 머리로 되돌아왔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인가. 많이 마시지 않길 망정이지 완전히 풀어졌으면 이렇게 앉아 글도 못 쓸 뻔했다. 작가님은 자기 관리가 철저해서 술도 안 마실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이런 말을 들었다. 아니요! 저는 술을 엄청 좋아한답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술이 떠오르고 술을 보면 어울리는 안주가 떠오르는 사람입니다만.


한 때 남편과 아이들 없이 진심으로 혼자서 살고 싶은 적이 있었다.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결혼을 해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과연 결혼을 안 했다면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며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남편 없는 주말, 따뜻한 집에서 좋아하는 박효신 노래 들으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자유는 누릴 수 없을 거다. 가끔 가는 여행이 설레고 좋은 것처럼 가끔 누리는 자유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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