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위를 많이 탄다. 찬바람을 싫어해서 한여름에도 에어컨의 바람 온도가 26도 아래로 떨어지면 견디기가 힘들다. 겨울에 트는 보일러 온도도 25도는 넘어야 한다. 찬 기운이 느껴지면 몸을 움츠리는 것은 물론 머리가 띵하고 아파온다. 남편과 나는 성격과 취향이 정반대지만 둘 다 추위를 탄다. 그런데 남편이 살을 찌우고 근육을 키우면서부터 갑자기 더위를 타기 시작했다. 몇 안 되는 공통점 중 하나가 사라지고 말았다.
반대로 만나야 잘 산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주변에 반대 성격인 커플이 많기도 하다. 우리 부부도 성격, 성향이 반대지만 연애 시절부터 25년이 돼가도록 싸우지 않고 잘 사는 것 보면 맞는 말이긴 한가보다. 결혼 전에 본 사주에서도 우리 둘은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한다. 아마도 처음엔 자신이 가지지 못한 점에 끌렸을 테고 점차 볼트와 너트처럼 서로에게 꼭 맞는 존재가 되었으리라.
남편과 반대여서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손의 온도 차이다. 내 손은 항상 차가운 반면 남편 손은 따뜻하다. 산책하거나 어딘가를 걸어갈 때 우리는 항상 손을 잡는데 여름에는 남편이 더 적극적으로 내 손을 잡고 겨울에는 내가 남편의 손을 덥석 잡는다. 화살표로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자면 한 방향이 아닌 양 방향 화살표를 주고받는 것이다. 더울 때는 내가 양보하고 추울 때는 남편이 좀 더 양보하면서.
손의 온도 차이만큼이나 우린 서로 다르다. 외향적이고 말이 많고 돋보이길 좋아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내향적이고 필요한 말만 하고 조용히 있고 싶어 한다. 나는 주말이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남편은 집에서 쉬는 걸 더 좋아한다. 여행을 가서도 나는 미리 계획을 세운 뒤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고 싶어 하지만 남편은 아무 계획 없이 편안하게 쉬는 걸 좋아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우리가 어떻게 싸우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걸까? 단순히 사랑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함께한 세월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우리 관계에서 핵심 키워드는 바로 '배려'와 '존중'이다. 찬물과 뜨거운 물이 만나 마시기 좋게 미지근한 물이 되듯이 서로 다른 우리가 만나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양쪽 끝에 서 있었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점점 가운데로 이동하고 있다.
배려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는 게 배려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배려하지 않는 관계가 부부나 가족이기 십상이다. 가족 간의 많은 트러블이 서로 배려하지 않아서 생긴다. 존중이란 높이고 중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우리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함으로써 다투지 않을 수 있었고 상대방의 좋은 점을 습득해갔다.
남편 덕분에 대쪽 같은 내 성격이 유들유들해지고 네모 반듯한 성향도 동글동글해져 가고 있다. 남편은 내 덕분에 행동이 좀 더 빨라지고 부지런해졌다. 이제 남편이 더위를 타기 시작했으니 덕분에 나도 추위를 덜 타게 되는 것일까? 싫어하는 찬바람을 기꺼이 참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집에 함께 있을 때 여름엔 얇은 외투를 걸치고 겨울엔 두꺼운 외투를 입으면 될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사람으로 인해 변화하는 건 희생이 아니라 기꺼운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