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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홍 Mar 11. 2024

[1년차]7.당신 딸이어도 정말 기분 안 나빴을까요?

끄적끄적 제약회사 직장인 성장기

10년전, 20년전에 비해서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자인 직원에게 기대되는 부당한 role이 존재하고

특히나 여자 영업직원에게 있어서는 그 role이 내부 고객이 아닌 외부 고객과의

접점에서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이 있을 것이다.


외부 고객으로부터의 부당한 대우나 요구에 있어서 회사가 회사의 직원인

나를 보호해 주는데 힘써줘야 하는데,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나의 상사나 동료가

남자인 경우에는 관습처럼 으레 해왔던 일들이 한 명의 ‘여자 직원’이 들어옴으로써

문제가 되고 조심해야할 번거로운 일들로 바뀌기 때문에

내 존재 자체가 귀찮아질 수 있다는 위험이 도사린다.


물론 계몽된 직장 동료들이 혹은 사회가 그러한 상황들에 놓인 나를 탓하거나

귀찮아 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로 인식하고 미연에 방지하고자 함께 힘 쓴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꿈도 꾸기 힘들다.

그렇다면 나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는 존재는 결국 오롯이 나 하나다.

그래서 나는 모든 신입사원들에게 해당 되는 말이겠지만 특히나 여자라면 더더욱

본인의 stance를 처음부터 명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음주와 관련되어서도 무리해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마시다가

어느 순간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다거나 내 자신이 망가지는 느낌이 들어서

‘저는 그만 마시겠습니다.’라고 한다면 다들

‘쟤 왜 분위기를 망치지? 왜 저래? 안그랬잖아?’ 라고 할거다.

갖은 핑계를 대며

‘제가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마시지 않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 중에 정말 꼰대 같은 사람들은 (문제는 꼭 이런 꼰대가 어느 동네나 한 명씩은 있다는 것이다)

‘야, 알코올이 소독해줘’라고 한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음주를 즐기고 맞춰줄 자신이 없다면 나는 무리하지 말고 처음부터 그냥 못 마신다고 하고 정말 꿋꿋이 마시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잔에 한잔만 따라 놓고 ‘짠’만 한다.

처음엔 뭐라 할거다. 왜 못 먹는지를 꼬치꼬치 묻거나 싫어할 수 있으나, 딱 2달만 참고 견디면 그냥 나는 담배를 안 피는 사람처럼 술을 안 먹는 사람이 된다.


일을 시작한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같은데, 어느 날

내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왔다.

음주와 관련 된 것은 아니었으나, 내 기준에서는 만약 내가 이 일을 그냥 넘어간다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간다면 나는 으레 그래도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가버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 전화가 온다.

왜 내가 자리를 박차고 집으로 갔는지 이해할 수 없단다.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설명했으나,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본인 딸이라면 끔찍이 여기는 상대에게

나는 이런 나를 이해 해 줄 수 없다면 이 회사는 내가 다닐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당신 딸이라면, 정말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겠냐’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고 그리고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면 그 선을 정말 아슬아슬 하게 넘었다고 볼 수도 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던 상황이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 의견을 존중해 줬기 때문에 그 사람을 욕할 이유는 없다.

어쨌든, 그렇게 상대방의 사과와 함께 나는 그 날 이후로

사회 초년생의 여자라면 누구나 느꼈을 법한 나를 스스로 지키려고 한 행동들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넘어섰고

물론 뒤에서는 ‘쟤는 또라이다. 잘못 건드리면 안된다’고 수근거렸을 지는 모르지만, 만약 뭐 그랬다면 난 또라이로 쭉 나를 지키며 직장 생활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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