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에 대한 고찰과 우아한 극복 방법-김천또라이 편
마케팅 부서로 이동 한 이후, 나는 열심히 출장을 다녔다.
이전에 영업부에서는 나의 직접적인 고객이 내가 담당하는 병원 내 처방권을 가진 의사였다라고 한다면, 마케터가 된 이후 나의 고객은 영업소 소장님을 포함한 영업부 직원들(내부 고객)과 그들이 담당하는 지역의 병원의 의사들(외부 고객)으로 늘어났다.
당시 회사의 영업부 조직 구조 상, 상급종합병원은 다른 부서가, 나와 함께 일하는 영업부는 그 이하 병원을 전체 cover하였기 때문에 본인의 target에서 가장 큰 매출 비중을 차지하는 병원은 대부분 2차병원 (준 종합병원, 종합병원) 혹은 지역의 의료원이었다.
내가 담당한 제품은 이미 특허가 만료되어 시장에 50개가 넘는 generic와 경쟁하는 오리지널 제품이었다. 시장의 자연 성장률은 5-6%를 보이고 있었으며 결국 정해진 파이를 서로 땅따먹기 하듯 경쟁해야 하는 치열한 시장이었지만 오리지널 제품 자체의 규모가 600억대이고 전체 시장이 1000억대였으니, 회사에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제품이었다. 다만 출시한지 20년이 되어 가는 약이었기 때문에 영업사원들은 언제나 마땅한 call 거리를 짜 내는 것이 항상 고역이었다.
그런 영업부 직원들에게 있어 '서울에서 인사드리러 온 새로운 마케팅, 새로운 PM(Product Manager)'는 존재 자체로 좋은 call(영업 담당자가 고객을 만나는 것을 call이라고 부른다) 거리였다. 만나서 같이 면담을 할 일정을 잡기 위한 대화, 같이 만나는 시간, 그 이후 follow up 이렇게 3개의 call은 뽑아 낼 수 있는.
게다가 열의가 넘치는 나는 더더군다나 어디든 불러주면 간다고 했었으니, 왜 마다하겠는가?
나는 종합병원과는 다른 양상의 개원가 시장을 빠르게 이해하고 싶었고, 그리고 50명 가까이 되는 영업 조직과 빠르게 친밀해지고 싶었고 일단 발로 뛰면 더 파악이 빠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전국을 다녔다.
그리고 영업부 소속일때 마주했던 또라이와는 또 새로운 느낌의 또라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또라이 두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1. 김천 또라이 :
아주 날카롭고 예민하고 한 성격 하게 생겼다.
태어나서 김천이라는 동네는 그 때 처음 가봤다. 영업부 소장과 담당자, 나, 그리고 고객A(그 지역 의료원 과장)과 같이 복지리를 먹는 자리에서 기억에 남는 반찬은 맨 밥 뿐이었다.
앉자마자 본인과 나 사이의 계급 가르기 비슷한 내용의 대화를 던진다. 이미 내성이 많이 쌓인 평범한 수준인지라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며 넘겼다.
'훗 이정도야 뭐 개가 짖네' 라고 생각하며...
내가 온 목적은 우리 제품의 매출 증진에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대화의 주제를 담당하는 제품으로 돌렸다.
그러자 갑자기,
"XX씨, 오후 6시에 해가 떠 있어요 지고 있어요?" 라고 물었다.
'이 놈이 점심 12시에 왠 저녁 6시 타령이지?' 싶을수도 있지만, 나는 눈치를 깠다.
이미 특허가 풀려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 놓인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해가 지는 6시를 말한다? 지는 해에 내 제품을 비유하면서 어딘가 꼽주려는 것이다.
'이놈아 그래도 내가 영업 2년은 구르고 온 사람이다' 싶었고 왠지 그 사람의 말에 당황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받아쳤다.
"과장님, 요즘은 저녁6시에도 해가 떠 있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나올 지 몰랐던 것일까? 본인의 공격에 흔들림 없는 나를 보더니
'제품 B는 지는 해다' 라며 대놓고 꼽을 준다.
여기까지도 생글생글 웃으며 버텼다. 정말 괜찮아서 웃은 것은 아니고, 내가 얼굴을 붉혀봤자 결국 나에게 이득이 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웃었다. 하지만 속은 부데끼고 마주 앉은 사람의 면상을 보고 있자니 입맛이 똑 떨어져 부글부글 끓고 있는 복지리는 내버려 두고 맨밥만 퍼 먹었다.
함께 있던 소장, 영업 담당자는 이러한 대화가 익숙한 것인지 혹은 비수처럼 꽂히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본인들을 향하지 않는다는 것 만으로도 위안이 되는지 혹은 새로 마케팅을 맡은 나에 대한 무언의 신고식이었던 것인지 3일은 굶은 사람들처럼 밥만 먹어댔다.
지랄 맞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각오하고 왔지만, 막상 마주하니 정말 쉽지는 않았다.
이래저래 자리를 마무리하고 일어나려는데 대뜸.
"제가 말이 심했나.. 상처 받은건 아니죠? 오해하지 말아요 나도 딸 가진 아빤데"
아니 여기서 아빠가 왜 나오나. 갑자기 울컥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오른다.
급히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며 가라앉힌 마음을 부여잡는다.
누군가를 저주하고 싶지 않지만,
'꼭 당신의 딸 자식이 너와 똑같은, 아니 너보다 더 한 사람을 만나 그 세치 혀로 남을 괴롭혔던 곱절로 고통받을 것이다.' 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또라이가 사라지고 담당자 선배 차에 타는 순간 나는 정말 울고 싶지 않았는데 눈물이 흘렀다.
"아니 제가 울고 싶은게 아니고 진짜 눈물이 왜나죠..?" 라며 당황하셨을 선배님께 얘기했지만 조용히 차분한 노래를 틀어주며 나를 달랬다.
김천 또라이는 말 끝마다 본인이 어떤 병원에서 수련을 받았으며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강조했다. 김천 의료원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본인의 기준에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 말 끝마다 느껴졌다. 현재 나에 대해 만족하지 못 할 때, 못난 사람은 영광스러웠던 과거에 집착하고 머무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자존감을 상대를 깎아 내리며 회복하는 못된 성향이 합쳐진 김천 또라이는 어떻게 보면 불쌍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의 모습을 반추삼아 나는 현재의 내 모습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앞으로 더 나가기 위한 미래의 나의 모습을 그려보는데에 내 에너지를 쏟을 것을 다짐했다.
자존감은 타인을 통해 채워지는 것이 아닌 나 스스로 회복하는 것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그리고 나는 김천 또라이에게 그날, 문자를 남겼다.
당황해서 찬물을 들이키는 나약한 인간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너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어떻게든 알려주고 싶었다.
"과장님,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고견 잘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