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3.갑질, 그 기저 자격지심에 대하여 2
갑질에 대한 고찰과 우아한 극복방법-군산 또라이
지난 김천 또라이에 이어 이번엔 군산 또라이를 소개해보려 한다.
김천 또라이를 겪어내고 한층 단단해진 나는, 영업부에서 또라이 1, 2위로 김천 또라이와 박빙을 겨루고 있는 군산 또라이를 만나러 출장길에 나섰다.
태어나서 군산도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지난번 김천은 같이 다녔던 영업부 직원이 국내 제약사에서 이직하신 경력 있는 사람이라 노련한 구석이 있었지만(그게 갓 마케팅이 된 PM을 재물 삼아 call 거리를 채우는 것일지라도) 군산을 담당하는 영업부 직원은 나보다 후배인 1년 차 신입이었다.
해당 영업소에서 미친놈으로 유명해서 기존 직원 중 아무도 이 사람을 담당하고 싶지 않아 신입 영업 직원이 희생양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 직원을 많이 도와주고 싶었다. 닳고 닳은, 본인의 영업 노하우가 있고 곤조가 있는 영업부 직원들을 구슬리기는 어렵지만, 패기있고 젊고 욕심 있는데 아직 본인의 스타일이 잡히지 않은 영업부 직원들은 함께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회사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며 으쌰으쌰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같이 무언가를 만들어 가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마음에 갑옷을 챙겨 입고, 군산으로 향했다.
군산 또라이와는 저녁을 함께 먹었다. 그 사람은, 나는 서울에서 온 '여자' 마케팅 PM이기 때문에 예의를 갖추고 조금 어려워했지만, 담당 직원에게는 다소 막무가내였다.
신입 직원이 저녁자리가 시작하기 전, 나에게 언질을 주었다.
"PM님은, 다음 날 아침 중요한 회의가 있어 오늘 밤 기차로 올라가셔야 한다고 미리 얘기하시고, 늦어도 10시 반에는 일어나세요. 뒤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함께 있어주고 싶었지만, 신입 직원의 호의를 거절하지는 않았다. 후배지만, 나이는 나보다 많았고 나를 배려해 줘서 하는 얘기가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었다.
저녁을 먹는 내내, 영업부 직원의 호칭은 새끼였다. 본인은 많이 마시지도 않으면서 직원이 술을 마시지 않으면 왜 안 마시는지 강권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사람을 일주일에 2, 3번은 만나고 있다고 하니 나는 그 직원이 너무 안쓰럽고 애처로워졌다.
사실 그 자리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조차 안된다. 뭐랄까. 학교 폭력의 방관자가 된 기분이랄까.
내 눈앞에서 자행되는 갑질을 저지할 용기가 없었다.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자리가 마무리되길 바라며 이제 기차를 타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나는 기차를 타러 가고, 고객은 담당자에게 2차를 가자고 한다.
이미 술에 하얗게 질린 담당자가
"속이 너무 안 좋습니다" 라며 거절의 의미를 전하자
"응 토하고 다시 마시면 돼" 라며, 등을 두드린다.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그렇게 도망치듯 그 자리를 나와버렸다.
군산 또라이와의 대화의 80%는 자기 자랑이었다.
그런데, 그 자랑이 본인이 군산에서 얼마나 좋은 아파트에 사는지,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다 판사 변호사 의사라느니 하는 얘기였다.
정말 딱 그 수준이었다. 뭐랄까 좀 없어 보였다.
정말 잘난 사람은 자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10년을 일을 하면서 서서히 깨달은 부분이지만, 그 당시에도
'이 사람은 자랑할 것이 저것뿐이구나. 정말 알량한 본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저런 것들을 자랑이라고 얘기하는구나. 그리고 그 자랑을 들어줄 사람이 주변에, 본인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영업부 담당자들 뿐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군산 또라이의 담당자는 어찌 보면, 영업 담당자라기보다는, 군산 또라이의 자존심 지킴이?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별 같잖은 자랑에 맞장구치고 들어주면서, 자존심을 지켜주는 대가로 담당자는 실적을 쌓는...
서울로 올라오는 길 나의 마음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누군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본인의 자존감을 내려놓게 되는 상황에 놓인 담당자에 대한 안쓰러움과
해결해 줄 수 없는 나의 상황,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저 방법이 정말 잘 통한다면 그가 이겨낼 만큼 강인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나의 마음을 발견하고 느낀 죄책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