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4.루팡 그 존재에 대하여
Demotivation, 적은 내부에 있다.
월급루팡.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종종 '오늘도 월급 루팡 성! 공!'을 자랑스럽게 외치는 글들이 보인다.
물론, 365일 중 출근하는 모든 날에 내가 할 수 있는 100%를 다 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했을 때
'그렇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날은, 70%-80%를 하는 날도 있지만 또 어떤 날은 120%-150%를 하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보았을 때, 그 합은 100%를 상회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는 회사와 계약관계로 맺어진 피고용인이며 나에게 기대되는 1명의 몫을 해 내는 것은 계약의 근간이며, 이는 나의 성취감이나 자기만족으로도 이어지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정 욕구가 기본적으로 강한 사람인지라 '1명의 몫'보다는 더 많이 혹은 더 잘 해내는 나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기대가 있으며, 나의 노력과 성취가 타인에 의해 인정받을 때, 큰 만족을 느낀다.
그래서 학창 생활을 무난히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학교라는 곳은 시험과 성적 객관화된 지표로 나래비를 세우는 곳이고 그에 따라 인정을 받기가 너무나 유리한 구조다. 게다가 시험은 출제 범위가 정해져 있으며, 대략적인 출제 유형이 정해져 있으니, 얼마나 인정받기 쉬운 곳인가? 항상 그렇지는 않더라도 내 노력에 대한 배신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나는 대체로 인정받았으며, 이는 나에게 상당한 동기 부여로 작용했다.
그런데, 직장 생활은 조금 달랐다.
각자 하는 업무가 다를 수 있었고 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었으며, 평가하는 기준 역시 학교의 시험처럼 명확하거나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예전에 학교에 다닐 때처럼 그냥 막연하게 '공부만' 잘해서는 인정을 받기, 혹은 평가를 잘 받기 어려웠다. 다양한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흔히 말하는 줄타기를 잘해야 할 수도, 운을 기대해야 할 수도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 보면,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막연히 열심히 주어진 일을 잘해서는 내가 150%를 했다 할지라도, 80%의 노력만 들이고도 전략적인 행동을 취한 사람보다 나쁜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나를 괴롭혔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월급 루팡'의 존재였다.
이 존재를 내가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가 내게는 너무 어려웠다.
학교에도 물론 공부를 잘하지 않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존재는 나의 평가, 나에 대한 인정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내가 그들에게 동화되어 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지 않는 한 나는 이들과 무관하다.
그러나, 팀 안의 월급 루팡의 존재는 달랐다. 월급 루팡이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 일들이 나에게 넘어오기도 하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팀장의 비위만 잘 맞춰 평가를 잘 받게 되는 경우 립서비스에 약한 나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 도 있다. 혹은 팀장이 너무나 인류애적인 사람이라 '우리 팀은 one team이니까, 같은 평가를 받자'라고 하는 경우,
'아니 어차피 같은 평가를 받는데 누구는 열심히 하고 누구는 가방 들고 왔다 갔다만 하고 내가 왜 이래야 하나'라는 생각이 절로 나게 된다.
우리 팀에 있는 월급 루팡은 하루종일 아무 일도 안 하는 것 같은 날들이 50%는 되어 보였다. 그리고 나머지 50% 중 절반은, 외근을 핑계로 본인이 친한 영업부 직원들을 만나 밖에서 노가리를 까는 데 소요하곤 했다.
새로 나온 제품을 담당하면서 내가 하는 일의 반의 반도 안 하는 것 같은 사람이 높은 연차로 내 우러급의 2배는 벌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끔은 이 양심 없는 사람을 때려주고 싶었다.
외국인 사장 앞에서 전략을 발표해야 하는 날, 구글 번역기 같은 걸 돌려서 슬라이드마다 적어 온 스크립트를 읽어대고, 즉석에서 던져지는 질문은 팀장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토스하는 모습 속에서 배울 점이라고는 정말 단 하나도 없는 사람을 보면서, 어떤 날은 나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이렇게 열심히 하는가? 나는 정말 아등바등 이 자리에 오기까지 2년 동안 마음을 졸였는데, 저 사람은 어쩜 저렇게 운이 좋을까. 열심히 하는 내가 등신인 걸까?'
어떤 날은 나도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고 월급 루팡을 제대로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나 불편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월급 루팡과 함께 3년을 일하면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더 알게 되었다.
나는 정체되어 있는 것을 싫어하는, 불편해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 스스로 발전이 없는 나를 발견할 때, 심하면 자기혐오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타인으로 인해 받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 나에게 더 집중하는 것이 내가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