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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홍 Nov 17. 2024

[4년 차]8. 교수님, 저는 미저리입니다.

논문은 처음인 사람의 졸업논문 준비기

대학원 생활은 생각보다 금방 흘러갔다. 

직장인인 2부 학생들에게는 학교에서 배려를 해 주어 4학기 짜리 과정을 5학기에 마칠 수 있게 해 주었지만, 졸업시험은 full time학생들과 함께 봐야 했기에 기껏해야 논문을 작성하는 시간을 조금 더 번 셈이었다. 


정말 어~ 하고 있다가는 어~ 하고 졸업이 아닌 수료만 해야 하는 상황에 닥칠 수도 있었다. 

논문 준비는 나름 졸업으로부터 1년이 좀 더 남은, 

그러니까 8월 졸업이니 그전 해 5-6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논문을 써 본 적이 없으니 맨땅에 헤딩하듯, 그러나 나 나름대로의 단계를 설정해서 차근차근 해 나갔다. 


1. 어떤 주제로, 어떤 data를 기반으로 한 논문을 쓰고 싶은지 고민한다. 

주제는 그 당시 마케팅을 담당했던 제품과 관련된 질환으로 가닥을 잡았다. 

아무래도 직장과 병행하다 보니 너무 동떨어진 주제를 잡게 될 경우 병행하기 어려울 것 같았으며,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으면 좀 더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심평원에서 연구목적으로 신청해서 쓸 수 있는 건강보험 big data를 활용해 

연구를 진행해 보고 싶었기에 활용 data에 대해서도 가닥을 잡았다. 


2. 벤치마크 하고 싶은 논문을 찾아 선정한다. 

뭐든지 처음이었던 나에게 무에서 유를 1년 안에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주제는 달랐지만, 내가 벤치마크 해 보고 싶은 논문들을 열심히 뒤져 3편 정도를 선정하였다. 

각 논문에 내가 생각하는 연구 주제를 접목시켜 가설, 연구 방법에 대한 대략적인 idea를 정리한다. 


여기까지 완료하고 교수님의 피드백과 도움이 필요했다. 

심평원에 data를 신청하고, 받기까지 IRB 통과부터 data 반출과 관련된 프로세스도 복잡하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나는 빠르게 교수님과 논의해 주제와 방법론을 확정하고 싶어 교수님과 면담 일정을 잡기 위해 메일을 썼다. 


메일에 답변을 꼭 주시는 교수님인데, 아마도 교수님은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셨는지 답이 없었다. 

문자로 다시 한번 알림을 드렸지만 

어쩌면 매일 얼굴을 보는 1부 학생들과는 달리 저녁때 나타나는 2부 학생의 문자는 

우선순위에서 한참 더 밑에 밀려있었을지도 모른다. 원망하는 마음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나마 친분이 있는 1부 학생을 통해 외근이 잡혀있는 어느 날 교수님의 세미나 스케줄과 장소를 파악했다. 

세미나가 끝날 무렵 나는 강의실 밖에서 교수님을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교수님이 밖으로 나서는 순간, 앞을 가로막고 


"교수님!" 


이 시간에 여기 나타날 수 없는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 표정에 이어 

'아차!' 답변을 해야 했는데!라는 미안한 표정이 뒤따라 온다.    


"어..! 어 맞다 내가.. 바빠서.. " 


"아니에요 교수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죠! 바쁘신 것 같아서 제가 불쑥 왔습니다!"


교수님은 그날도 시간이 되지 않으셨다. 바로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하셔야 했지만, 

나는 교수님 편한 시간에,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했고 

그 주 주말 나는 교수님의 집 앞 스타벅스에서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주섬 주섬 30 page 파일에 빽빽이 정리된 reference, 

관련 자료들을 꺼내가며 그렇게 그날 주제 선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교수님은 나의 열정을 사셨는지, 

혹은 논문 publication을 위한 큰 그림이었는지 data 반출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해 주시기로 했다. 


아직도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란 교수님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뭐랄까 미저리를 발견한 듯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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