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약으로 심포지움 하면 무슨 이야기를 해야할까요...?
출시된 지 20년이 된 약을 마케팅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call거리가 될 법한 브로셔를 만드는 것도, 다른팀과 목표 배분 싸움을 하는 것도, 나보다 10년 이상 업계에서 일하신 영업부 선배님들 앞에서 전략을 발표하는 것도 아니었다.
매년 똑같은 고객 pool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심포지움에
내 약에 대해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야할지를 고민하는 것이었다.
우리 팀에서 매년 비슷한 시기에 진행했던 100여명의 주요 고객을 대상으로 한 1박 2일 심포지움의
행사의 틀을 짜고, agenda를 꾸리며 각 강연자를 섭외하고 contents를 drafting하는 작업까지
마케팅이 담당했다.
나는 같은 이야기를 다시 듣는 것을 극혐한다. 책도 영화도, 다시 보는 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행사에 온 사람들에게 20년 된 약에 대해
20년 내내 들어왔던 똑같은 이야기를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형식적인, 으레하는 행사 중에 의미없는 1시간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엄청 고민했다.
새롭게 나온 논문이 없는 20년 된 약에 대해서, 사람들은 무엇을 궁금해할까?
영업부 직원들을 열심히 따라다니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XX제품은 시장 점유율이 얼마에요?" 였다.
제품을 직접 처방하는 의사들이 왜 그게 궁금할까?
인간은 누구나 나와 다른 누군가를 비교하는데에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집단과 나를 비교하며 내가 집단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spectrum이 집단에 속해있음을 확인하고는 안정감을 느낀다.
같은 맥락으로 의사들은 다른 의사들이 해당 질병에 대해 어떤 약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 당시 회사에서 구독하는 다양한 외부 data를 통해 병원종별, 지역별로 해당 질병 코드에 어떤 약물이 쓰이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고 이 contents를 활용해서 심포지움을 기획해 보았다.
같은 질병 코드로 처방하는 약물이 병원 종별로 차이가 나는 것은 병의 중증도에 따른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너무나 신기하게도 지역별로 처방을 많이 하는 약물 순위가 달랐다.
질병 X를 치료하는 약품 A,B,C를 두고 (A는 효과대비 안전성의 balance가 가장 좋은 약물, B는 효과가 더 좋으나 부작용이 더 있는 제품, C는 효과는 조금 떨어지지만 안전성이 제일 좋은 약물)
어떤 지역에서는 효과가 가장 좋은 B약을 선호하고, 어떤 지역은 안전성이 제일 좋은 C를 선호하는 양상들이 보였다.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20년동안 들어본적 없는 contents였으니 새로웠고,
그 자료를 물꼬로 연자와 패널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평이 매우 좋은 행사였다.
행사를 마치고 두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1. 새롭지 않은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도 마케터의 역량이구나
2. 결국 모든 고객은 '인간'이라는 점 (그것이 설령 대한민국 의사일지라도),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 높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