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끼를 발견하게 된 순간!
두번째 회사에서의 1년은 정말 정신 없이 지나갔다.
일주일에 2-3일은 야근을 해야 했으며, 해가 다 진 캄캄한 밤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잔나비의 센치한 노래를 들으며 '나는 무얼 위해 이렇게 일하나' 라는 생각을 했다가
신나는 노래를 들어대며 '그래도 열심히 사는 나 칭찬해!'라는 자기 위로로
스스로가 지쳐 나가 떨어지지 않게 애썼다.
그래도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성장 하고 있어!!!'라는 동화 같은 이유보다는 (물론 어느 정도의 영향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야근한 시간 만큼 눈치 보지 않고 야근 수당을 신청할 수 있었다는
매우 현실적인 이유 덕분이었다.
결국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것이 아닌가?!
두 번째 이유는 나의 '인정 욕구'가 다양한 방법으로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나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내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두 번째 회사의 전무님은
아마도 나를 다루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아셨던 것 같다.
회사가 한 해를 정리하고 다음해를 준비하는 연말 행사의 일부 사회를 맡게 되었다.
250여명의 직원들 앞에서, APAC(아시아퍼시픽) 사장이 동석한 행사였기 때문에
영업부의 차장님은 한국어로 사회를 보았고 나는 영어로, 그 내용을 전달했다.
어쩌면 나는 약간의 '관종'끼가 있는 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무대에 서는게 떨리고 부끄러울 수 있지만 나는 나름대로 그 시간들을 좋아하고 즐겼던 것 같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기 두달 전, 나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APAC 내 올해의 마케터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정확한 상 이름이 있었지만 상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부상이었다.
수상자들을 터키에서 열리는 행사에 초대하는 것이었는데, 동반 1인까지 초대가 가능했으며, 비즈니스 석을 타고 갈 수 있었다.
첫 번째 회사에서 갈증을 느꼈던,
'너는 연차가 안되어서, 너는 아직 순서가 아니라'라는 내 기준 납득되지 않는 핑계 없이
순수하게 정말 실력으로 평가 받는 순간이었고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부상으로 터기로의 여행이라니!
이 상황에서 회사를 나간다는 부분이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노력한 부분에 대해 정당하게 받는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서 동반 1인으로 엄마를 데려갈 생각을 하니
K-장녀로 뭔가 엄마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어깨가 절로 우쭐해졌다.
그러나, 나는 지지리도 복이 없는 년이었다.
그 해 초부터 스멀스멀 코로나가 꿈틀 대더니 코로나로 인해 터키에서 열리는 행사가 잠정 연기되었다.
내 생에 첫 비즈니스석 티켓은 그렇게 코로나와 함께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