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차]2.텃세 극복기

나의 무지를 인정하기 도움 요청하기

by 벨라홍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는 기존 직원들이 경력직으로 이직해 온 직원들에게 텃세를 부리기로 유명했다.

과연 어떤 형태의 텃세일까? 대놓고 무시하는 것일까, 아니면 은근히 편 가르기를 하는 분위기일까.


특히 항암제에 전문성이 있는 회사이다 보니 영업부 직원들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나는 이 회사에 오기 전까지 항암제 마케팅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고, 아는 것도 많지 않은 상태였다. 경력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7년 차였지만, 약간은 어수룩하면서도 의욕만 가득한 ‘뉴페이스’였다.


약이 잘 나가는 회사일수록 영업부 직원들의 평균 연령대는 높은 편이다. 게다가 회사가 신입사원을 뽑지 않다 보니, 막내 라인의 직원들도 나보다 최소 네 살은 많았다.


그래서 나는 막내에서 허리급 정도 되는 직원들 중, 비교적 친절해 보이고 활발히 활동해 인사이트가 많아 보이는 몇몇 분들에게 1:1 면담을 요청했다. 사전에 나름 공부도 했지만, 책상 앞에서 배운 내용과 실제 현장이 다를 수 있기에 확인이 필요했고, 앞으로 함께 일할 영업부와 친목을 쌓을 기회이기도 했다.


만약 이번이 첫 번째 이직이었다면 훨씬 더 겁이 나고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라서인지 ‘잘 해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미팅을 시작했다. 열심히 준비한 자료를 띄워놓고 스몰토크를 나누던 중, 영업부 과장님이 물었다.


“XX님, 그전에 항암제 해본 적 없죠?”


내가 항암제 마케팅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미 전사 메일에 소개된 경력사항을 통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설령 메일을 보지 않았더라도, 입사 첫날 부서 앞에서 내가 어떤 회사에서 무엇을 담당했는지 소개했으니, 저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사실 확인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처음이지? 해본 적 없지?’라는 확인 사살. 그 질문에 나는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고, 그 순간 대화에서 상대보다 열위에 서게 만드는 교묘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대 해석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그때 나는 얕잡아 보이고 싶지 않아 잔뜩 부풀려 몸을 보호하는 고슴도치 같았다. 그런데 상대의 더 길고 날카로운 질문이 내 가시 사이로 파고들어 생살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네. 뭐, 해보지 않았어도 결국 약을 잘 파는 게 다르겠습니까? 잘해봐야죠.”

애써 의연하게 대답했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내 무지를 들킬까 두려웠다. 한 알에 800원 하던 약을 팔아 연간 600억 원 매출을 내는 시장과, 한 바이알에 100만~200만 원 하는 약을 팔아 연간 1000억 원을 기록하는 시장은 엄연히 달랐다. 동시에 조금은 괘씸하기도 했다.

아니, 누군가에게는 모두 처음이 있는 게 아닌가? 나를 당황하게 만든 그도 경력직으로 이직해 왔으면서, 내 마음을 이렇게 모른다는 말인가?


첫 텃세는 생각보다 포장지 없이 날것 그대로라 당황스러웠지만, 오히려 명료했다.

다음 말을 고르고 골라 의연한 척하던 모습을 내려놓고, 결국 솔직한 나를 내보였다.


“저 좀 많이 도와주시고 알려주세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자, 의외로 빠르게 극복할 수 있었다. 내 무지도, 그리고 관계의 벽도.

이런 종류의 텃세는 괜히 더 잘 아는 척하거나 다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편이 오히려 에너지를 아끼고 더 중요한 곳에 집중하게 해 준다.


영업부와 가까워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척’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제 역할을 못하는 건 문제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태도는 생각보다 상대와의 벽을 빠르게 허물어준다. 단, 상대가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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