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 없는 회사 적응기
드디어 꿈의 회사에 입사했는데... 현실은?
짧았던 두 번째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세 번째 회사 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 순간,
나는 마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드디어!'
이 바닥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부터 줄곧 염원해왔던 바로 그 회사.
뭐 회사마다 약간의 기업문화 차이 정도는 있겠지만...
"여기는 분명 뭔가 다를 거야!"
하지만 세 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깨달은 진리 하나.
회사는... 거기서 거기다.
'체계? 그게 뭔가요?'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새로운 입사자를 위한 체계가 말 그대로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회사도 딱히 체계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함꼐 일하는 동료 덕분에 나름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같은 제품을 담당하지는 않아도 마케팅 업무를 함께하는 선배들이 "언제든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라며 사수 역할을 자처해 주셨고, 특히 베테랑 부장님께서는 업무 프로세스를 정말 일목요연하게, 마치 교과서 같이 알려주셨었다.
그런데 여기는... 코로나 시기에 조인해서 사무실에 사람들이 항상 상주하지 않는다는 특수 상황을 감안해도, 뭔가 더 체계가 없었다.
버디? 버디가 누구야?
입사할 때 회사에서 내게 배정해 준 건 사수가 아닌 '버디'였다. 나와 비슷한 연차의 동료 말이다.
재택이 일주일에 2-3일 가능한 상황에서,
그 직원이 출근하는 날과 내가 출근하는 날이 겹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결국 그 '버디'와는 딱 한 번 점심을 함께한 게 전부. 그 이후로는 업무 관련 궁금증 해소는 꿈도 꾸지 못했다.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모든 프로세스가 알음알음, 구전으로 내려온다는 점이었다.
신입사원을 뽑는 회사라면 당연히 연수팀이나 교육팀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을 제공해줄 텐데...
여기는 신입사원을 뽑은 적이 없는, 언제나 경력직만 뽑는 회사였다.
기안을 어떻게 올리는지, 결재는 어떻게 받는지, 이런 사소한 것들조차 정확히 안내가 없었고 적어도 담당자가 누구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아, 나는 누군가에게 '이걸 어떻게 하나요' 라는 질문에 앞서 먼저
'누구한테 물어봐야하나요'라는 질문을 해야 했다.
"저 정말 죄송한데요~"
이 말로 입을 떼며 구차하게 궁금증을 해결할 때면 나 스스로 똥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맡은 제품에 대한 교육?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이 바닥에서는 그런 거 바라면 안 되니까.
문제는 나는 분명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는 똥멍청이가 아닌데,
할 줄 알면 별것도 아닌 간단한 것들을 유치원생이 선생님한테 질문하듯...
"이건 어떻게 하는 거죠?" 이렇게 물어대는 내 모습에 스스로도 한심했다.
상대방의 귀찮아하는 표정과 말투에 괜스레 움츠러들 때면, 마음이 여간 불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업력이 6년은 쌓인 사람이니까...
이런 작은 것들에 무너질 수는 없었다. 꾸역꾸역 그렇게 적응해나갔다.
"왜 이 회사는 이렇게 체계가 없는 거지?"
이 질문을 정말 진지하게 해봤지만, 답을 찾을 이유도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바로 현장에 투입시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니까 경력직을 선호한다는 기업들의 입장...
원치 않았지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왜 이 회사가 이렇게 텃세가 심한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기본적인 프로세스 하나 처리하는 데 맨땅에 헤딩하며 좌충우돌했던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니...
뭐랄까,
내가 삽질한 시간들이 아까워서 힘들게 파악한 그 시덥잖은 것들이 그렇게나 소중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파악한 별것도 아닌 것들을 새로운 경력직이 나에게 질문하면...
마치 시집살이 당한 사람이 시어머니 짓을 하듯 '너도 당해봐야지'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들더라.
이 마음은 나만 그랬던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물론 다들 배울 만큼 배우고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이니 대답은 해주지만,
그 마음 때문에 태도가 차갑거나 고깝게 나오는 것 같았다.
체계를 갖추는 게 시간도 걸리고,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처럼 느껴지거나 별것 아닌 것 같이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그 곳에 속한 사람들의 태도와,
더 나아가 조직 문화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결국 시스템이 사람을 만든다는 걸 몸소 체험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