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차]3. 텃세 극복 실패기

당하지 않는 게 이기는 거라 생각했다.

by 벨라홍

이 사람은 나한테 텃세를 부리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나를 싫어하는 건지를 통 알 수가 없었다.
텃세를 부리는 거라고 하기엔,
텃새는 뭐랄까.
상대방이 고안한 퀘스트를 내가 극복하고 깨고 나면, 그와 부쩍 가까워지는 맛(?)이 있는데
이 사람은 나랑 뭘 하는 건지 아리송했다.

그녀는 medical 부서에서 일을 하다가 marketing에 관심을 갖고 내가 join 하게 된 부서의 시니어 마케터와 합을 맞춰 함께 일하고 있었다.
항암제의 경우 특정 약물이 특정 암종에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라, 암종별 마케팅을 두곤 하는데,
그녀와 시니어 마케터는 A 암종을 담당했고
그녀보다 2살 정도 어렸던 나는, 동일한 약의 B암종을 담당했다.
그래서 나는 부서 내에서 시니어 마케터와 함께 협력은 하지만 다소 독립적으로 일을 하는 상황이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내가 join 한 자리를 그녀가 원했다고 들었다. 아마도 시니어 마케터와 함께 합을 맞추면 어쩔 수 없이 연차가 어린 사람이 보조하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고 일하는 모양새가 결국 뭔가 시니어 마케터에게 보고하고 지시받는 입장이 되는지라 내 자리로 이동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뭐 이런 구구절절한 개인의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나에게 한껏 냉랭한 그녀의 태도가 당혹스러웠다.

이 조직이 워낙 텃세를 부려서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내내 찬바람이 쌩하니 부는 태도로 나를 대하니, 여간 불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걸 콕 집어 이야기하기도 참 애매한,
여자들만 아는 그 여자들의 교묘한 편 가르기. 학창 시절에도 당해보지 못한 은따... 랄까?

부서장은 전형적인 남자 이사님이었기에 이런 기류를 세심하게 알아차릴 리 없었다.

그렇게 뭔가 살얼음 판을 걷는 기분으로 딱히 개인적인 얘기는 하지 않지만 업무 얘기만 무미 건조하게 하고 있는 날들이 이어졌다.
먼저 말을 붙여보지 않은 것은 아니나, 돌아오는 대답이 냉랭하니 더 이상 얘기할 거리도 없고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고 performance를 보여줘야 하는 내 코가 석자인 마당에 별로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전체 제품에 대한 forecasting을 제출하기 위해서 시니어 마케터와 내가 각각의 암ㅈ암종에 대한 forecasting 합쳐야 했는데, 해당 작업이 워낙 복잡하고 서로의 작업이 서로의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 순서를 정해가며 엑셀에 작업을 하는 일들을 반복하던 어느 날.

그녀가 내 기준, 누가 봐도 일부러, 내가 수정한 최종 파일이 아닌 그전 파일을 '전체 공유'하며 '이사님'을 참조 넣고, 내가 어떤 부분을 누락했다는 사실을 메일에 교묘히 적어 넣었다.

그 순간 나는 화가 치솟았다.
아마도 그간 나 나름대로 쌓였던 감정들이 그 작은 이메일에 터졌던 것 같다.

우리끼리 오고 가는 이메일이었다면 이렇게 화가 나지 않았을 텐데,
그때의 나는 작은 실수 하나 하고 싶지 않은, 이직한 회사에서 모두에게 '일 잘하는 사람으로 잘 보이고 싶은' 마음만 200%였기에, 순간 정신을 잃고
'이 년이!!!'라는 생각과 함께 폭풍같이 전체 회신으로 답변을 보냈다.

명확하게 내가 업데이트한 파일과 내용이 있는 메일을 참조하며 그녀의 잘못을 꼬집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네가 누락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쓰진 않았지만,
첨부한 메일을 보시면, 내가 이미 업데이트 한 파일을 전달했고, 어떤 경위인지 모르나 누락되어 있는데, 해당 파일을 다시 보라는 식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메일을 보내고 난 다음날 나는 이사님에게 불려 갔다.
무던하고 관심 없는 줄 알았던 이사님은, 생각보다 텐션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그 메일을 보냄으로써 내가 얻고자 하는 게 뭐였냐고.

그 질문을 듣고 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글쎄, 난 무엇을 얻으려고 했지?
네 이년! 나는 잘못이 없다. 너의 그 사소한 잘못? 아니면 나를 엿 먹이려고 했던 그 치부를 내가 드러내주마! 같은 복수심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나 우습게 보지 말아라. 너만 메일로 나를 쪽 주냐? 나도 할 수 있다! 와 같은 옹졸한 마음이었나?

결국엔, 나는 여기 일을 하러 왔고, 사람들과 잘 지낼수록 내가 하는 일에 윤활제가 될 텐데
너무 내 눈앞, 네 손에 놓인 것들에만 집중해 왔었던 건 아닐까?
조금만 더 멀리 보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똑같은 방법으로 치사하게 호다닥 메일을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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