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같은 때가 되면
새싹 같은 아이들을 교실에 모아놓고
화분에 물을 주듯 당연하게
카네이숀 만들고 엄마 아빠 가족 그림을 그리세요
다른 아이들은 당연한 그 시간이 올 때마다
내 마음은 도망칠 궁리를 합니다
크레파스 색연필 들고 신이 나서
하얀 도화지를 채워가는 아이들 사이에 묻혀
나는 멈춰있습니다
우리 가족을 그려야 하는 시간이 올 때마다
나는 남몰래 생각합니다
행복한 세 식구를 그려야 해
웃고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자꾸 화난 얼굴이 떠오릅니다
도둑질한 것을 숨기는 아이처럼
나는 화악 얼굴이 붉어집니다
세 식구가 손잡고 나란히 걸어본 적도
어디 가서 사진을 찍거나
다정하게 붙어있던 적이 없어
크레파스를 내려놓았습니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칩니다
혼날 것 같은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대신 화목한 옆집 가족을 그려보기로 합니다
우리 가족이 아니라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사라집니다
온 힘이 쭈욱 빠져 내려갑니다
괜히 웃음이 납니다
그림 속 가족들이 하나하나 환해집니다
다정하게 오밀조밀 살 붙이고 모여
방긋 웃는 가족을 그립니다
선생님이 다가옵니다
내 그림을 봅니다
가족들이 모두 웃고 있네
보기 참 좋다
남의 가족 그림을 보며 말합니다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줍니다
내가 꿈꾸는 가족으로 마무리합니다
버리려 했던 그림을 어쩌다 집에까지 가져옵니다
엄마 아빠가 내 그림을 봅니다
내가 어째 저렇게 생겼냐고 투덜거립니다
엄마도 아빠도
그림 보는 눈은 있는 가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