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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릴리 Sep 21. 2024

가족그림


어버이날 같은 때가 되면

새싹 같은 아이들을 교실에 모아놓고

화분에 물을 주듯 당연하게

카네이숀 만들고 엄마 아빠 가족 그림을 그리세요

다른 아이들은 당연한 그 시간이 올 때마다

내 마음은 도망칠 궁리를 합니다


크레파스 색연필 들고 신이 나서

하얀 도화지를 채워가는 아이들 사이에 묻혀

나는 멈춰있습니다


우리 가족을 그려야 하는 시간이 올 때마다

나는 남몰래 생각합니다

행복한 세 식구를 그려야 해

웃고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자꾸 화난 얼굴이 떠오릅니다

도둑질한 것을 숨기는 아이처럼

나는 화악 얼굴이 붉어집니다


세 식구가 손잡고 나란히 걸어본 적도

어디 가서 사진을 찍거나

다정하게 붙어있던 적이 없어

크레파스를 내려놓았습니다


선생님과 눈이 마주칩니다

혼날 것 같은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대신 화목한 옆집 가족을 그려보기로 합니다

우리 가족이 아니라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사라집니다

온 힘이 쭈욱 빠져 내려갑니다

괜히 웃음이 납니다

그림 속 가족들이 하나하나 환해집니다

다정하게 오밀조밀 살 붙이고 모여

방긋 웃는 가족을 그립니다


선생님이 다가옵니다

내 그림을 봅니다

가족들이 모두 웃고 있네

보기 참 좋다

남의 가족 그림을 보며 말합니다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줍니다

내가 꿈꾸는 가족으로 마무리합니다


버리려 했던 그림을 어쩌다 집에까지 가져옵니다

엄마 아빠가 내 그림을 봅니다

내가 어째 저렇게 생겼냐고 투덜거립니다

엄마도 아빠도 

그림 보는 눈은 있는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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