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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릴리 Sep 22. 2024

길어지는 방

어린 새가 운다

검은 방문 앞에서 잠긴 손잡이를 흔들며

수족관 깊숙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심장이

눈물 어린 새 옆으로 뻗은 손을 보고 

죽어가는 새들이 땅에 내려와 부리를 벌려

어미새가 맞고 있는 소리들을 하나씩 주워 먹는다 


통성(痛聲)으로 허기 채운 새가 요기를 멈추고

구역질을 한다

구역질을 하다 말고 고개 들어

일제히 한쪽으로 목을 꺾는다

날개를 뒤로 저어 지나간 바람들을 부른다

쌀알 같은 것들을 바닥에 열 맞춰 내려놓으며

딱딱한 머리를 바닥에 부딪치고 있다


바닥이 울린다

벽이 진동한다

비명이 들린다

비린내가 난다

흰자에 열꽃이 피어난다

피냄새 주위로 검은 새들이 더 모여든다


옆집 불화가 현관 앞을 기웃거린다

티비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벽 늦게 방문이 열린다

방안이 가까워진다

주저앉은 어미새 주위로

빠진 앞니가 방바닥에 함부로 나뒹군다

잇몸에서 피가 물처럼 떨어지고

붉게 물든 장판 위로

머리뭉치들이 엉켜 날린다

멍든 얼굴이 부어오른다

부은 눈이 감긴다


검은 새들이 어린 새를 붙잡는다

방에서 먼 곳으로 질질 끌고 간다

어린 새의 울음이 바닥에 물처럼 고이고

방은 차츰 멀어진다

눈은 어미새를 보는 채로

방의 길이가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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