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일을 하다가
어머니께 연락이 왔습니다.
아버지께서 새벽에 쓰러지셔서
지금 응급실에 계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큰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검사는 제대로 받는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이 났습니다.
만 73세의 고령이 쓰러지셨다면
정말 다양한 가능성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때 처음으로 들었던 감정은 후회였습니다.
어떤 후회였냐면,
내가 헛되게 보낸 시간들에 대한,
그런 후회였습니다.
아버지께 언제나 가장 좋은 모습만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내가 시간을 헛되게 보내서
최선의 나를 보여드리지 못한 게
정말 뼈저리게 후회가 되었습니다.
저도 자녀를 키우는 입장이기에
자녀의 못난 모습도 사랑스럽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버지께 저는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었고,
나의 나태와 안일함으로 인하여
그러지 못한 순간이 많았다는 게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헛된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깊게 다짐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정밀 검사 끝에 아무 문제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단순히 긴장상태에서 과로를 하셔서
그런 거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돌아오시자마자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집 청소를 하셨고,
오히려 긴장이 풀린 어머니가 쓰러지듯 잠드셨으며,
아버지 소식을 들은 고모들이
오열을 하며 부모님 집으로 달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마음가짐도 그날 이후로
달라졌습니다.
내가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을
최소화하자고요.
젊었을 때 시간낭비는 나쁘지 않지만,
올해 만 40살이 된 저에게는
부모님과 함께 할 시간이 별로 없는 느낌입니다.
아버지는 2년 전에 은퇴하셨습니다.
32년 동안 같은 곳에서 일하셨고,
만 71세가 되어서 비로소 일을 그만두셨습니다.
아버지의 은퇴를 저도 마음으로 준비하면서
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의 은퇴는 단순히 생계수단의 종결이 아니라,
제가 유년시절부터 계속 바라보던
어떤 풍경이 끝이 나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일터는 초등학생 시절 저의 놀이장소였고,
배움의 터전이었으며,
제가 세상과 연결되는 어떤 통로였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살던 집보다도
그 일터의 풍경이,
제 유년시절에 드리워진 주된 색채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아버지의 일터에서
저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한 때는 이런 것을 배우는 게 따분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일터를 떠나시는 시점이
점점 다가올수록
그 배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 줄이라도 더 배우려 노력했고,
가슴에 남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아버지의 일이
가장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을지를 고민했고,
결국 나름의 답을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일을
아들인 저와 제 가정이 잘 배워서
다음 세대로 온전히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서 하신,
그 일 속에 담긴 빛과 소금 같은 의미가
시대 속에서 존재를 잃지 않고 더 진전하며
이어지고 계승되게 하는 것.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답에 도달했고,
그 답을 실천하기 위하여
오늘도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로 사는 것,
딸의 아버지로 사는 것,
아내의 남편으로 사는 것,
어머니의 아들로 사는 것.
저를 둘러싼 사랑의 굴레 속에서
이렇게 살아갈 수 있기에
힘을 내고, 하루 종일 또 걸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