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의 제목은,
영화 '파수꾼',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
그리고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입니다.
영화 파수꾼은,
한국 고등학생들의 우정과 폭력과
그로 인한 비극을 다룬 작품이고,
'액트 오브 킬링'은,
인도네시아 학살의 가해자들, 즉 사형집행자들이
수십 년 후에 피해자들의 연기를 해본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입니다.
그리고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소련의 수용소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억울하게 복역하는 이반 데니소비치라는
어느 선량한 사람의 평범한 하루를 다룬 소설입니다.
3편의 작품의 공통점은
비극이라는 점입니다.
슬프고, 아프고, 비참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해와 폭력으로 인한 우정의 붕괴,
매일 밤 이유도 없이 끌려나가 죽어나가는 평범한 사람들,
이유도 없이 구금되어 가혹한 중노동 속에서 매일 생존투쟁을 해야 하는 수형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제가 이 작품들 속에서 더 깊게 들여다보는 지점은,
바로 가해자들의 무지입니다.
이 세 작품들에서는
이러한 가해자들의 무지가
공통적으로 드러납니다.
영화 파수꾼에서 친구들에게
잔혹한 폭력을 가하는 주인공 기태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친구들에게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실컷 상처를 줘 놓고
몇 마디 말로 그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일이 그렇게 될 리가 없습니다.
상처는 회복되지 않고, 상처 입은 자의 역공에
가해자 역시 심한 상처를 받고 무너져 갑니다.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인 안와르는
인도네시아 학살극의 집행자 역할을 했던
전직 우익 깡패입니다.
그는 피해자들을 구타하고 직접 죽였습니다.
얼마나 죽였는지 셀 수도 없습니다.
그는 자기의 일을 여전히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피해자 연기를 해보기 전까지는요.
안와르는 다큐멘터리 촬영자들의 요청에
자랑스럽게 당시의 상황을 연기합니다.
이번에는 피해자 입장에서 연기를 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연기를 하면서 안와르는
점점 당황합니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자랑스러웠던 폭력이
피해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두렵고 끔찍한 것인지
이제야 자각하게 되었거든요.
그는 피해자 연기를 하고 나서야
폭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가해자의 무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일상에 집중하기 때문에
가해자들이 직접 소설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왜 이런 기가 막힌 일상을 보내야 하는지
한 번 더 고민해 보면 이 상황의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적에게 사로 잡힌 전쟁 포로였다는 이유만으로
수용소에 가둬버린 구 소련 정부,
그에게 10년의 징역형을 선고한 사법부,
이러한 법을 만든 입법부,
수용소를 만들고 운영하며 형을 집행하는 모든 시스템,
더 나아가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데니소비치를 전쟁 포로로 만들었던 전쟁 그 자체.
이러한 시스템의 일부를 구성하는 고위직들은
자신들의 안일한 판단으로
누군가의 삶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저 서류를 읽고 도장을 찍을 뿐입니다.
이것 또한 무지입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자비합니다.
이러한 폭력의 구조는
인류사 전체를 통하여
크고 작은 영역에서 셀 수도 없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첫 번째, 타인의 고통에 어떻게 귀 기울일 것인가.
두 번째, 나와 내 가족이 무지한 가해자의 폭력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