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에 남은 계절

by 눈부신꽝


과일은 늘 식탁에 오를 일이 없었다. 혼자 살면, 그런 것들이 당연하게 귀찮아지지 않나. 사 와도 신선할 때 부지런히 손질해서 먹어야 하는데, 대체로 그러질 못했다. 결국 상한 걸 버리는 건 괜히 미안한 기분이라, 이럴 바엔 차라리 비타민이나 챙겨 먹자 싶었다. 더구나 제철 과일을 챙겨 먹는 일은 그때 내가 사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계절이 건네는 작은 선물 같은 의미가 거기에 담겨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일상엔 그 호의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무렵, 누군가와 함께 장을 보던 시절이 있었다. 함께 마트에 가면 나는 늘 카트를 밀며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아마 지금쯤의 계절이었던가. 과일 코너에 멈춘 그는 수박을 들어 올려 껍질을 두드리고, 귀를 기울여 그 안의 소리를 들었다. 어떤 소리가 나는데 이게 잘 익은 거라고, 지금 먹어야 제맛이라며 평소보다 한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여전히 다 비슷해 보였다. 그래도 그가 고른 수박은 유독 달고 시원해서, 좋아하지도 않던 수박을 쉽게 받아들이게 됐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수박을 반으로 가르고 조각을 내는 일은, 조금은 어떤 의식처럼 치러졌다. 나는 한 번도 수박을 통째로 사 본 적이 없었고, 늘 썰어진 걸 얻어먹는 게 익숙했다. 손질은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의식이 시작되면, 괜히 머쓱해져 음료 잔을 채우거나 장 본 것을 정리했다. 때로는 조각이 날 때마다 장난스럽게 효과음이나 추임새를 얹는 게, 그 순간의 내 유일한 일이었다. 그가 수박을 자를 줄 아는 사람이라서, 그리고 내가 자를 줄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해 여름은 조금 더 견딜 만했다.




포도는 늘 큰 송이를 작은 송이로 떼어 담아냈다. 통째로 두면 훨씬 탐스러웠을 텐데, 그는 이상하게도 늘 그렇게 나눴다. 작은 송이를 각자 접시에 옮겨 놓고 먹다가, 그중 몇 송이는 그의 손을 거쳐 내 입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게 특별한 일이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잠깐이라도 돌봄을 받는 쪽에 있다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렇게 해 주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많이 느슨해졌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이면, 베란다엔 귤 상자가 놓였다. 박스째 사 온 귤을 들어내어 밑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위에도 살포시 덮어 두면 더 달고 오래간다고 했다. 그 얇은 종이 한 장은 겨울 내내 작은 이불처럼 보였다. 귤이 줄어들수록 추위도 조금씩 누그러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평소 귤 냄새가 손에 배는 걸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무렵엔 그런 게 별로 거슬리지 않았다. 각자 휴대폰을 보거나 책장을 넘기면서도 귤을 까는 속도는 늘 비슷했다. 서로 다른 걸 하고 있지만, 같은 리듬으로 손을 움직이는 그 시간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그런 조용한 반복 속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평온이 있었다.


딸기는 언제나 하얀 접시에 비슷한 양으로 담겼다. 흰색 접시 위에서 강렬하게 대비되는 빨간색. 그걸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 관계의 온도는 몇 도쯤 일지 괜히 궁금해지곤 했다. 딸기의 색이 너무 선명해서, 마음까지 좀 더워지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러다 시선을 옮기면, 마지막 한 알을 내 쪽으로 조용히 밀어주는 그의 손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서로를 향한 마음도 이 빛을 닮은 분명한 색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끔은 작은 봉투에 체리를 담아 오곤 했다. 작고 귀찮은 과일이라 내가 먼저 고를 일은 없는 과일이었는데, 그는 예뻐서 좋다며 종종 사 오곤 했다. 꼭지를 하나씩 따서 옆에 가지런히 모아 두는 자기만의 습관을 좋아했던 사람. 입안에서 조심스럽게 씨를 발라내며 “왠지 모르게 시간이 조금 느려지는 기분”이라고 말하던 얼굴이 생각난다. 그렇게 작은 질서를 만들어 두는 게 참 그 사람다웠다.



지금도 마트에 가면 과일 코너를 잘 살피지 않는다. 수박은 여전히 자를 줄 모르고, 귤은 박스로 사놓고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결국 물러서 다 버린다. 포도는 귀찮아서 손이 가지 않고, 체리는 그와 함께하던 시절 이후로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다.

그래도 수박이 쌓여 있는 쪽을 지나칠 땐, 늘 잠깐 걸음을 늦춘다. 매끈한 껍질에 빛이 번지는 걸 바라보다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곤 한다. 손을 뻗어보진 않는다. 그저 멈춰 있기만 해도 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딸기를 담았던 하얀 접시나 포도를 알알이 떼어주던 손이 함께 떠오른다. 그 시절의 과일 맛이, 오래 음미하다 삼킨 것처럼, 입안을 계속 맴도는 느낌이 든다.




계절은 해마다 새로 오는데, 그때의 맛만은 좀처럼 다시 느끼기 어렵다. 그래도 언젠가는 어떤 과일을 베어 물다 문득, 그 시절의 단맛을 닮은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


꼭 같은 맛이 아니어도 그와 조금 닮은 결이 입안에 남는다면···. 아마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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