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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Aug 02. 2020

발가락 골절

- 삼재 (Storm Photo by NOAA@noaa)


<이런 게 날벼락이야>

코로나로 온 세상이 두려움에 떨며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 앞에서 긴 줄을 만들고 있던 그때, 

나는 왼쪽 두 번째 발가락이 부러져 수술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 입원하고 하반신 마취를 하던 날 

너무 무서워서 내 영혼이 도망가버린 줄 알았다. 

공구상처럼 즐비하게 나열된 망치와 펜치 등을 보고 싶지 않았고 수술 내내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는

걸 지켜볼 수가 없어서 미리 수면 주사를 놔달라고 요청했다.

<발가락 Matt Seymour@mattseymour>

허옇게 창백해진 얼굴로 멍해있는 내게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다.

"정말 별거 아니에요, 철사 하나만 박을게요."

"네? 뭐를 박아요?"

"그냥, 실버 클립 굵기의 아주 작은 철사예요, 입원합시다."


다른 병원에서는 수술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깁스만으로도 뼈가 붙는데는 지장이 없지만 나중에 혹시 기능이 떨어져서 <그때 제대로 된 치료를 해볼걸> 

하는 후회를 막기 위해 고려할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병원 담당 선생님은 옵션이 없었다.  

"당장 입원하고 2시간 뒤 수술합니다"라며 간호사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내 얼굴을 한번 휙 쳐다보더니,

"뼈 붙인다고 4,5개월 고생할래요 아님 길어야 한 달이면 제대로 붙는 치료를 할래요?"

"........."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병원 건물 지하 4층에 있는 심전도실을 거쳐 MRI 촬영을 했다.

몸에 뜨끈뜨끈한 열이 감지돼서 누운 채로 잠을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던 것 같다.

아니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겨우 발가락 한마디가 부러진 것뿐인데 온몸을 스캔하는 MRI를 찍는다는 게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이건 좀 오버하는 거라고.

갑자기 미간이 찡그려졌지만 누구에게 항의할 수는 없었다.


내가 원하는 병실은 없었다.  코로나로 많은 병원들이 폐쇄되거나 새로운 환자를 받지 않다 보니 급하게 치료가

가능한 병원은 거의 콩나물시루 같았다.

"며칠 동안 입원해야 하나요?"

"최소 일주일이요."

"네에?"

아니, 수술없는 선택지가 있는 발가락을 위해 일주일? 

요즘에는 큰 내과 수술도 3,4일 상처부위가 아물면 퇴원을 시키는데 일주일, 그것도 최소?

그냥 덧에 걸린 느낌이었다.




'회사에는 뭐라고 말하지? 대타도 없는데 치료하는 동안 그 불편한 마음은 어쩌고'

'의사 선생님은 최소 2주 동안은 출근하지 말라는데 차라리 사표를 내야 하나?'

'깁스하고 출퇴근하다가 지하철에서 밟히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그렇지 않아도 동료직원이 중병에 걸려 입원 치료 중이라 그즈음의 직장생활은 무기를 잃어버린

병사 같은 날들이었다.

'정말 미쳐버리겠네.'

사장님은 치료에 필요한 기간은 남은 월차에서 빼고 푹 쉬라고 하셨다.

하아, 나는 이렇게 휴식 없는 불쌍한 근로자가 되는구나.  




<실비는 병원에서도 좋아해>

수술 전에 동의서가 필요하다면서 행정직원이 찾아왔다.

제일 첫 번째 질문은 "<실비보험> 있으세요?"였다.

있다고 하자 다음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수술할 때 더 좋은 소독약이 있는데 혹시 모를 염증을 예방하는 약입니다.  

추가 비용 30만 원 있습니다."  

"네?"

"마취약이 좋은 게 있는데 30만원 추가됩니다."

"네?"

"핀을 박을 텐데, 8만원 추가하면 더 좋은 걸로 할 수 있습니다." 

"네?"

"무통주사는 1개 정도 기본으로 들어가 있지만, 수술 후 바로 놓는 무통주사가 있고

그래도 아프다고 호소하는 분들이 있어서 2개 더 추가하면 30만원입니다. 

"네?"


짜증이 났다.

그의 손에 있는 종이에는 추가 비용이 필요한 목록이 빼곡히 쓰여 있었다.

"언제까지요, 이걸 다 해야 하나요? 원래 이렇게 하나요?"

바늘이 무서워서 주사나 침도 싫어하는 나한테 목록은 공포 그 자체였다.  

게다가 이걸 다 하다가는 비용이 5백을 넘어 거의 천만원이 들지도 몰랐다.

실비로 다 감당이 될까 걱정하면서 짜증을 내니까 그 직원이 눈치를 채고는 

"물론 저희가 의사선생님의 소견서를 써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불안해 하니까 그러면 다 그냥 두시라면서 휙 나가버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간호사 선생님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면, 간혹 수술부위에 염증이 나서 고생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염증 치료제만 추가하세요."

듣고 보니 그 말도 일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직원을 불렀다.

결국 더 좋다는 마취 주사 외에 수면 주사, 염증 치료제, 무통주사 3개, 수술 실,  이하 몇 개... 

(피할 수 없는 MRI는 이미 했고) 이렇게 결정했더니 병원 직원들은 나를 수술실로 옮겼다.


<수술실 by Arseny Togulev@tetrakiss>

<나는 신체 고통에 취약한 사람이다>

너무 무서웠다. 

의사 선생님은 아직 옆방에서 다른 수술을 한다고 했다. 

남자 간호사 1명과 여자 간호사 1명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나를 수술대 위에 눕히고는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가끔 말을 걸어왔다. 

"2시간 걸려요, 아프지 않아요, 근데 꼭 수면마취가 필요하세요? 겁먹지 말아요 별거 아니에요 등등.."

드디어 마취 선생님이 오셨다.

"꼭 수면 주사 맞아야 해요? 금방 끝나는데?"

"네, 빨리 좀 놔주세요, 이 소음들도 무서워요."

"알았어요."


시간을 가늠해 보니 수술은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환자분 일어나세요, 수술 끝났어요. 주무시면 안 됩니다."

너무 경미한 수술이라 회복실은 필요도 없고 마취에서 깨어나길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나는 바로 병실로 옮겨지고 간호사님이 몇 가지 주의사항만 재빠르게 던져주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뒤척일 수가 없었다.  목과 두 팔만 움직이고 나머지는 돌처럼 꼼짝 하지를 않았다.

게다가 아무 느낌도 없어서 호랑이가 물어도 눈뜨고 쳐다볼 수 있을 만큼 내 몸이 낯설었다.

'이대로 하반신 마비가 되면 어떻게 하지?' 오싹하고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후, 쉴 새 없이 수액과 무통 주사액이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하루 세 번 식사와 많은 약이 주어졌다.

나는 잔뜩 불어 터진 수제비같이 허옇고 눈코 입은 알아보기 힘들게 변했다.  

약 때문인지 계속 꾸벅꾸벅 졸리는데 커피는 제한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야말로 4인실 환자들과의 합숙은 정신적으로도 심한 스트레스였다.  

내과적인 문제가 없는 환자들은 각자 불편한 부위에 깁스를 하고 병실을 이리저리 활보를 하거나

기껏해야 4,5일 함께 있을 정도의 만남이지만 나이, 직업, 결혼, 연애, 집, 가족관계 등 아주 기본적인

프로필을 요구했다.  

'맙소사, 도망가고 싶다.'


<조용하고 질문 없는 완벽한 송별회가 필요하다.>

다행히 수술도 잘되었고 추가적인 약 덕분인지 하나도 아프지 않아 신기할 정도였다.

의사 선생님도 만족했는지 5일째 되는 날 퇴원해도 되겠다고 하셨다.

퇴원 전날 나머지 환자 3명은 송별회를 하자고 했다.  

비록 적은 인원에 수시로 입퇴원이 이루어지지만 그 안에서도 서열, 시기, 질투, 우정 

이런 것들이 범벅이 되어 병실을 떠돈다.  

대책이 필요해서 저녁을 먹고 간식거리를 준비해서 영화를 보자고 제안했다.

병실 불을 모두 끄고 네플릭스에서 <전쟁 속에서도 피어나는 사랑>을 그린 영화를 틀었더니 

다들 노트북 주위에 모여들었다.

후딱 밤 11시가 되어갔다.


<병원에 삼재는 두고 나와야 해>

다음날, 퇴원 수속을 모두 마치고 짐을 꾸린 배낭을 등에 메었다.

다들 놀래서 그렇게 하고 걸어서 집에 가냐고 물었지만 나는 간단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병원 정문을 절룩거리며 걸어서 나왔다.  

통원치료를 하고 가는 사람처럼 씩씩하게 걸어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고 커피숍들을 지났다.  

멀리서 제2 롯데월드 위에 구름이 걸려있다.  

정말 끝내주게 좋은 날씨다.


삼재야 이쯤에서 헤어지자.




매주 일요일에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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