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들어간 김치

by 윈서


함께 식사를 할 때면 제니가 유난히 잘 먹는 반찬이 있었다. 소금에 절인 오이지였는데 김치와 다른 반찬은 한두 번 먹는 것으로 족하다면 오이지는 한 번에 세 개, 네 개를 먹을 때도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내게 물어보았다.

"오이지 담는 거 어려워요?"

"어? 맛있니?"

"네, 미국에는 피클이 있는데 짠맛만 나거든요. 그런데 이 오이지는 짠맛은 적고 씹을 때 더 맛있어요.

우리 엄마가 이거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마 꼬들꼬들한 식감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래? 할머니에게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고 해 볼까?"

"네, 배우고 싶어요." 제니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학생들의 주말 일정은 문화체험으로 채워져 있는데 민속촌이나 경복궁 방문, 그리고 롯데월드 등 놀이시설 같은 것들이다. 그중에서 직접 만들어 보는 체험형 일정은 [김치 담그기]가 있다. 김치는 이미 세계적인 음식이 되었고 아마존에서는 시즈닝 믹스가 팔리고 있다지만 나는 아직 경험 욕구 이상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제니도 김치를 곧잘 먹기는 했지만 정말 맛있어서인지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인지 알기 어려웠다.


우리 집은 어머니 덕분에 제육볶음이나, 생선구이 그리고 나물류와 계란찜이 아침상을 장식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처음 제니가 왔을 때도 그렇게 차려졌다. 그런데 하루 이틀은 양이 적더라도 먹어보려고 하더니 어느 날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부탁을 했다. "저는 원래 집에서 아침을 먹지 않았어요. 할머니 음식이 맛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 많이 먹으면 아침 내내 속이 좋지 않아요." 라며 아침을 먹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그렇구나, 아침을 먹지 않았어?"

센터에서 호스트 가정에게 아침 제공을 요구하기 때문에 잠시 걱정스러워했더니 눈치 빠른 제니는 "그러면 우유와 시리얼을 조금 먹을게요."라고 대답했다.

그 후로 우유 100ml에 시리얼 두어 수저를 넣어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학교에 갔다. 나는 그때 한식이 아무리 맛있고 몸에 좋아도 제니에게 모든 음식을 경험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본인이 담은 김치에 그렇게 애착을 보일지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어느 금요일 저녁, 일찍 들어온 제니가 저녁을 먹으면서 말했다.

"내일은 김치를 만들러 이태원에 갈 거예요."

제니가 만들어 온 다식

"그래? 몇 시에 가는데?"

"음,,, 아마 아침 10시쯤 나갈 거예요.

김치 만들어 올게요."

왠지 조금 신이 나 있는 것 같았다.

그전 주에는 다식을 만들어 왔었다. 6개 만들어서 2개는 본인이 먹고 4개를 들고 왔길래 어머니와 내가 맛있게 먹었다. 내일은 어떤 김치를 먹게 될까 기대가 되면서 이 맛에 홈스테이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약간 설레기도 했다.


김치를 들고 노래방을 갈 수 없어서 그랬는지 제니는 생각보다 일찍 들어왔다. 신발을 벗으면서 '이거 내가 만들었어요.'라는 듯 손에 든 김치 봉투를 들어 올리며 웃었다. 김치통은 생각보다 작았다. 체험이기도 하고 학생들도 어리다 보니 정말 맛보기용으로 보낸 것 같았는데 멸치볶음이나 나물 등을 보관하는 작은 반찬통 크기에 불과했다. 나는 반가워서 신발을 벗는 아이 앞으로 갔다.



"제니야 김치 담아왔네?" 아마 김치를 받아 들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랏!! 씩 웃더니 봉투를 들고 제 방으로 재빨리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일순간 '엇어, 왜 그러지' 하다가 그만 웃음이 나왔다.

'아하, 집에 갈 때 가져가고 싶은 거구나.'

다식처럼 내가 전부 먹어버려서 집에 못 가져갈까 봐 방으로 가지고 들어갔으리라. 김치가 살아있는 유산균이라는 걸 생각도 못한 행동이었다. 그 순간은 손에 쥔 걸 뺏기지 않으려고 숨는 아기같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큰소리로 "제니야 그거 들고 나와, 김치는 방에 보관할 수 없어." 라며 방을 향해 말했다.

만약에 내가 못 봤다면 방에서 김치가 폭탄처럼 터졌을지도 모른다.

방에서 나오더니 쑥스러웠는지 김치 냉장고 옆에 서 있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꽁꽁 싸맨 작은 김치통을 보니 맛을 보자는 말도 나오지 않았지만 본인도 먹어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맛을 보겠다고 조금 떼어먹다간 반이 없어질 판이었다.

"제니야 김치는 방에 두면 너무 시어서 안돼, 냄새도 많이 날 거야. 김치 냉장고에 보관해 줄게."

"아! 김치 냉장고오"

내가 냉장고 문을 열고 큰 김치통 위에 올려놓는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는지 알면서도 물어봤다.

"아~ 이거 김치만 넣는 냉장고라고 했죠?"

"그래, 나중에 집에 갈 때 줄게."

아무리 김치 냉장고라지만 2주 이상 보관하면 시어져서 가져갈 수 있으려나 생각을 했지만 실망시키기 싫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지 담는 법을 가르쳐 주면 어떻게냐는 내 제안에 어린애가 그걸 배우겠냐고 선뜻 대답하지 않던 어머니가 아이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꾸신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 식사를 하는데 "다음 주 일요일에 오이지 담는 법을 가르쳐 줄까?" 하고 물어보셨다.

"제니야, 오이지 담는 법 할머니가 가르쳐 주신대, 다음 주 일요일에 배워볼까?."

제니의 얼굴이 미소로 활짝 피었다.


일주일 후, 어머니는 큼직하고 곧게 뻗은 오이 10개를 사 오셨고 제니는 싱크대에 서서 소금으로 불순물을 씻고 절이는 등 모든 과정을 직접 체험했다. 만드는 과정이 어렵지 않고 시간도 불과 30분 내외로 끝나지만 할머니 옆에 바짝 서서 열심히 메모하고 비디오로 찍어서 기록으로 남겨두는 모습이 정말 너무 예뻤다.


그래, 김치는 이제 세계적인 음식이 된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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