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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윈서 Nov 29. 2020

나의 뮤즈는 어디에

어쨌든 써라!


 기억을 드래그하다,  동그란 얼굴, 잊고 싶은 기억, 소리 예찬, 하늘바라기, 깨져버린 손톱, 웅성웅성, 내가 뭐랬니?, 놓아버리기, 평정심을 잃어버릴 때, 한글, 겨울 예찬, 뚫어지게 바라보면 뚫어질까, 고무마는 왜 고구마일까, 거꾸로 자라는 분노, 하늘이, TV는 소음 통, 고마운 여러분, 그곳에만 있는 너

화면 속으로, 하얀 노트 속으로, 이제는 돌아와 나와 마주할 공간이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오늘도 코로나 덕분에 퇴근하자마자 서둘러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켜고 앉아있다.  크고 작은 약속들 없이 어느새 1년이 되어가고, 내년에도 크게 달라진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아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다행히 나에게는 글쓰기가 있어 오히려 약간의 압박감을 받으며 살고 있다.  누가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빠져든 이 작업을 통해서 마치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느낌을 받는다.   왁자지껄하던 주변이 갑자기 적막으로 빠져들고 공기의 뺑뺑한 리듬감 속에서 나를 숨기고 나를 찾는 이 작업이 참 좋다.


막상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려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무엇을 주제로 써야 할지 생각나지 않는다.  길을 걷다가, 음악을 듣다가, 대화를 하다가, 전화통화를 하다가 문득문득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던 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컴퓨터 앞에 앉으면 마법처럼 사라져 버린다.  습관적으로 자판기에 손을 올리고 떠오르는 대로 단어 몇 개를 조합해 놓으면 그다음은 막막해서 더 이상 모니터를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어떻게든 겨우 마침표를 찍는다 해도 그다음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마법은 내가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못쓰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누군가 내게 마법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한 줄 쓰기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일을 꾸준히 하라. 뮤즈가 찾아와 한 순간에 훌륭한 음악이 만들어지고, 한 획만으로 훌륭한 작품이 탄생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라.    - Elizabeth Gilbert, ted 강연 중에서 -

글 쓰는 사람에게 <뮤즈>는 언제 찾아올까?  

불현듯 2009년 TED.COM에서 'Eat Pray Love'의 작가 Elizabeth Gilbert가 <Your elusive creative genius>라는 주제로 강연했던 약 18분짜리 영상이 생각났다.  

작품인 'Eat Pray Love'가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르고 난 후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질문들을 받았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앞으로 다시는 최고가 되지 못할까 봐 두렵지 않은가?"였단다.  그녀의 대답은 "YES, I am afraid."였다.  덧붙여서 "그 외에 여러 가지 있는데, 예컨대 해초류 등이죠"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최고가 되지 못할까 봐,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 것은 일상 속에서 하는 많은 것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산책을 하다가 문득 머릿속에 특정한 표현이나 주제가 스치고 지나갈 때, 걸음을 멈추고 재빨리 스마트폰 메모 기능에 저장을 한다.  가능하면 모든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쉽지 않다.  또는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 불현듯 떠오르는 단어 몇 개를 기억해 두지만 개찰구를 지나면서 '삑'소리와 함께 사라져 버린다.  아마 그것이 Elizabeth가 말하는 뮤즈였을 것이다.  불행히도 한 작품이 끝낼 때까지 기다려주지도 않고 많이 보여준 것도 아니지만 뮤즈가 맞을 것이다.  TV 속 어느 가수가 "이 노래는 15분 만에 만들었어요."라고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15분 동안 붙잡을 수 있는 능력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뮤즈는 언제나 번개처럼 왔다가 사라진다.  완성도와 상관없이 시작한 글을 끝낼 수 있을 만큼 머물러주지도 않는다.


오늘도 나는 자판기 위에 손을 올려놓고 피아노 치는 시늉을 하면서 장난만 하고 있다.  내 손동작을 따라 글이 되고 문장이 되고 작품이 되는 신기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30분 만에 끝냈어요.  그런데 구독자 수가 이렇게 올라갈지 몰랐어요. 호호호"라는 셀프 인터뷰를 하면서 말이다.  

글 쓰는 것이 재미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살과 뼈를 깎고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서 한 작품이 끝나고 나면 폐인이 되다시피 변해버린 모습도 훌륭하지만, 그냥 일상을 살아가듯이 글쓰기가 내 몸에 붙어서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구력이 쌓이게 되면 생각의 깊이와 넓이가 확대되고 나의 이야기를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그날이 오지 않을까?  Elizabeth Gilbert의 조언처럼 말이다. "어쨌든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하세요, 뮤즈가 찾아와 당신에게 노크를 하면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계속 하던 일을 하세요.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당신은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사진 by Joyce McCown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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