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 부모가 못 된다. 그것은 굳이 부모가 되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사랑을 줄 수는 있겠지만 사랑을 가르치지는 못할 것 같다. 그게 전부다. 아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랑은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가 나를 보고 사랑을 배우지는 못할 듯하다. 사랑을 주면 가르치지 않아도 사랑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너무 낭만적인 기대다. 사랑을 주는 건 쉽지만 사랑을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고 느낀다.
나는 사랑에도 사람마다 주어지는 할당량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엄마를 사랑하느라, 그리고 나를 사랑해 보느라 그 몫을 다 썼다.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고, 기대를 걸지 않는다. 그뿐이다. 더 이상 사람을 사랑하기에는 무리라고 느낀다. 가장 최근의 연애를 끝내면서 나는 사람과 사람이 나눌 수 있는 가장 깊은 교감에 대한 기대를 놓게 됐다. 물론 그 사람은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 가장 다정하고, 가장 나를 잘 알고, 가장 나를 웃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나를 소진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고 결국 그렇게 싸움도, 오해도 없이 연애는 끝이 났다.
종종 만나는 친구들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리 잡으면 얼른 결혼을 하고 싶다든지, 아이를 얼른 낳고 싶다든지, 더러는 우리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는 말까지. 나는 그런 말들을 한 번도 이해해 본 적이 없다. 사랑이라는 건 뭘까. 어쩌면 진부하게 느껴지는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아무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다만 나는 생각했다. 사람을 알면 사랑을 모르고 싶어 진다고. 사람에 대해 알아갈수록 사랑에 대한 기대를 놓게 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몇 번의 연애를 하면서 느낀 건 나도 모르는 나의 밑바닥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까지 매달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참해지고,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간절해진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쩌면 내가 그런 연애 밖에 해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가장 마지막에 했던 연애는 온전히 나를 드러내 놓고 한 연애였음에도 결국 내가 먼저 헤어짐을 말했다. 결국 완전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연애는 없었음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말에 멈칫하게 되거나 애매하게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순간도, 연애를 하는 동안에는 흐려진다. 나는 그렇게 나를 잃어간다. 물론 나처럼 연애를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 사람의 말 하나하나를 무조건 인정하고,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고, 굳이 숱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서 연애하는 것. 그렇지만 내게 그런 연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와 그 사람 사이에 말하지 못할 불편한 지점이 생기는 순간 그 연애에는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내가 가끔 연애에 대해, 괜찮은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내가 욕망하는 몸과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안고, 입을 맞추고, 잠을 자고 싶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과의 관계를 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 기준에 맞추지 않고, 굳이 불편한 지점 없이 원하는 순간만 함께할 수 있는 것. 결코 사랑은 아닌 것. 그래서 내내 외로운 것일 수도 있고. 나는 굳이 이런 사실을 숨기고 싶지도 않고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뿐이고 이해받을 생각도 없다. 나도 자주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타인에게 나를 이해해 달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고집이다.
나는 사랑을 너무 하고 싶어서 사랑을 모르고 싶은 사람이다. 쉽게 사람에 기대를 하고, 순간의 강렬한 감정에 자주 흔들리는 사람이라서. 아무런 기대도, 불안함도 없이 내가 오로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는 순간이 올까, 모르겠다. 사랑은 어렵고, 불안하지만 내가 가진 욕망은 또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예전에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 여자 주인공의 마음이 나와 굉장히 닮아 있다고 느꼈다. 남편 루와 안정적이면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권태를 느끼는 마고와, 그런 마고의 앞에 나타난 새로운 남자 대니얼. 결국 마고는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다 새로운 사랑인 대니얼을 선택한다. 대니얼과 함께 있을 때 마고의 표정은 시종일관 들떠 보인다. 수줍게 웃기도 하고, 처음 사랑을 하는 것처럼 떨려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고와 대니얼이 빙글빙글 도는 놀이기구를 타며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어지러운 조명에 오래 얼굴이 젖어드는 두 사람을 보면서, 나는 그때 마고가 대니얼에게 가겠구나 하는 예감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설렘은 그뿐이다. 마고와 대니얼의 관계도 루와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함에 따분해져 간다. 묘한 권태를 느끼던 그때처럼 마고는 같은 표정으로 대니얼을 위한 머핀을 굽는다. 그리고, 대니얼과 함께 탔던 놀이기구에 혼자 앉아 빙글빙글 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랑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 생각했다. 결국은 끝도 없이 빙글빙글, 오르락내리락하는 놀이기구처럼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누군가와 함께 탔더라도, 언젠가는 혼자서 그 놀이기구에 오를 일이 생기기도 한다고. 사랑은 항상 제자리에 있을 뿐 그 주변을 도는 건 사람뿐이라는 것을.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랑에 대한 기대를 더 내려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주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라고는 확실하게 이야기하지는 못하겠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만 감히 현혹되기는 싫다는 거다.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랑만을 위한 사랑을 하고 싶지는 않다. 애석하게도 내가 가장 가까이서 본 몇 개의 사랑들은 다 실패로 끝이 났으니.
나는 지금 정지되어 있는 놀이기구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누구를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기분. 아득하고 멀다. 아무렇지 않게 버튼을 눌러 혼자 빙글빙글 돌 수도 있겠지만 나는 잠시 멈춰있고 싶다. 그동안은 제대로 된 풍경을 볼 틈도 없이 어지럽게 돌고만 있었으니까. 쏟아지는 조명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소란하던 노랫소리가 꺼지고, 어지러운 조명도 꺼진 어두운 장면 속에서. 사람과 사랑 사이를 욕망하며 턱을 괴고 앉아있기로 한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주기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