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라는 단어. 누군가는 행복, 기쁨, 고마움, 감사함으로 설명한다. 남의 일을 즐거워하고 기뻐한다는데 왜일까 늘 떨떠름한 기분.
원하던 대학 발표 당일, 예비번호 1번을 받고 애써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온 나에게 ‘넌 당연하게 합격이지!’라며 웃으며 축하해 준 아버지의 표현에서부터. 나의 연애 소식에 ‘축하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짓던 그의 모습까지. 어떤 것이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첫 사기업에서 일을 시작한 날에도, 퇴사를 결정하고 사직서를 낸 날까지 계속해서 들리던 ‘축하’한다는 말.
어찌 보면 너무도 가식적이고, 어찌 보면 너무도 무의미한 칭찬과 축하 아닌가.
왜인지 모르게 나에게는 불편한 기분을 주는 말. 가식이 담긴 건지 진심이 없는 건지 의문을 가진 순간 나는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축하를 건넨 적 있었나. 조금은 지치고 피곤한 마음에 받아본 적은 있었는지도 모를 요즘.
알 수 없어 말 자체를 숨기게 된 것은 나이 듦의 증거일 테다. 젊음이 좋다는 것도, 추앙받던 나이에서 젊음을 부러워하게 된 것도 전부 나이 듦에 의해서겠지.
나는 가장 좋아하는 친구 원이에게까지 질투를 하는데, 네가 너무도 독립적이라 부럽다 말하면서도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축하가 헤어짐이라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
네 선택을 존중한다면서도 내심 이별을 바라다니, 나도 참 웃기지. 부드러운 가슴에 가시를 숨기고, 풍요로운 미소 뒤 어두운 면을 감추는 것. 나의 추악함을 감추는 도구 중 하나가 축하가 된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수순이었다.
축하해, 축하,
정말 축하할는지. 고등학교 친구의 결혼식에서조차 잘 살길 바란다는 애절한 마음을 품고 있는데 말이야.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