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 말하면 너에게 부담이 될까?

by 벼리울

헤어지고 싶어, 솔직하게 말하면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


내가 조금 더 열심히 살기 위해서는 이별이 대답이 될 것 같거든, 얼굴이 동그랗고 유한 나는 사실 너무도 모난 사람이라 이리저리 구르곤 해. 그래야 조금이라도 모난 부분이 깎일 수 있을 테니. 나 요즘에도 ‘나는 솔로’가 나오는 수요일을 챙긴다? 사람들이 현숙이란 사람을 열심히 산다며 비난하는데, 난 그것도 너무 대단한 거야. 남미새든 여미새든 뭐든 미칠 수 있다는 게 너무도 멋있다 생각했어. 나는 조금 미쳐보고 싶었거든.


유난히도 습하고 무덥던 날, 서울에는 스콜처럼 한바탕 비가 쏟아졌다는데 내가 있는 평택은 너무도 평온한 거 있지. 매미는 여전히 울고, 풀벌레 소리가 추가되었어. 웬일인지 버스는 제시간에 맞춰 나를 태우러 왔고 덕분에 조금 걸으려던 나의 계획이 무산되어 조금 일찍 내렸어. 오늘은 예전에 듣던 노래를 다시 틀었는데 그래서일까 흑석동의 빨간 벽돌, 초록색 바닥이 인상 깊던 나의 옥탑방이 생각나지 뭐야.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들고 너는 왜 나에게 거짓말한 걸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밤, 한강을 걸으며 자살 방지 문구를 보며 과연 저 말이 위로가 될까 진지하게 고민한 그 밤처럼 짙고 어두운 날은 이제 없는데 말이지. 그때는 세상의 모든 악이란 악은, 피해라는 피해는 내가 입은 것 같았는데 지금은 너무도 평온한 삶을 살고 있으니 조금은 웃기더라. 오늘은 위스키가 너무도 간절했어. 그중에서도 특히 코퍼독 말이야. 항생제 때문에 술은 절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술 한잔이 너무도 그리운 거야. 한 잔 기울이며 나누던 대화도, 조금은 끈적한 음악까지 전부.


LP판 위로 흐르는 음악도 듣고 싶었고, 나그참파에서 나던 짙고도 어두운 향도 그리워, 나에게 제주는 그런 공간이었는데 말이야. 살짝은 어둡고 나무로 되어 습윤한 공간에 앉아 낯선이들 속 나를 트로피처럼 자랑하던 이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나는 너에게 실망했다 말했는데 사실 내 탓인 것 같아. 알면서도 모른 체 했으니 말이야.


겨울이었나, 너는 울면서 사랑한다 말했지. 나는 종종 눈을 가리는 네 앞 머리가 거슬려 옆으로 넘기곤 했는데 그때마다 넌 다시 앞머리를 내리며 나를 보고 웃었어. 우릴 보며 너무도 예쁜 커플이라고 사진을 남겨준 사장님 기억해? 우린 커플이 아님에도 능청맞게 웃었지. 그래서 나는 헤어짐이 없는 우리의 이별이 조금 슬픈 것 같아.


나는 알레르기가 있는 줄 알면서도 망고를 먹었고 너는 그런 나를 안아주었잖아. 왜 하필 네가 탈 택시가 고장 난 건지 밧줄로 동여맨 트렁크를 보며 가득 웃은 것 같아. 나는 가끔 그때의 온도를 떠올리곤 해. 네가 떠난 뒤 태국은 조금 외롭고 축축했거든.


보고 싶다 말하면 너에게 부담이 될까? 확신을 주지 못 했다면 그건 내 잘못이야. 벗어나고 싶다 말해서 미안해. 연애는 아니지만 결혼을 하게 된다면 너와 하고 싶다 말한 것도 전부. 너는 여전히 카메라에 여러 이야길 담고 있겠지? 난 더 이상 네가 담은 것들을 볼 수 없구나. 손바닥이 가득 찍혀 있던 벽도, 조금은 푸르던 인도네시아의 아침도, 우리의 추억이 담긴 가지인형까지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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