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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울 Mar 31. 2024

내가 사랑한 X들에게.


너에 대해 쓰기로 했다.

‘내가 사랑한 X들에게’라는 주제로 끄적이는 글.


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이름도, 성격조차 기억나지 않아

드럼스틱을 든 네 모습만 남았다.


홍대 길가에서 우연히 너를 만난 날,

우리는 달콤한 마들렌과 사랑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내 기억에 남는 건 네 손등에 자리한 커다란 점.


점식이랬나, 점이 너무 커서 생긴 별명이라니,

그 점도 사랑해 내 몸에 옮겨오고 싶을 만큼 널 사랑했다.


‘내가 의지가 되어줄게.’라는 말 한마디만 믿고 시작한 관계. 우리의 만남을 전부 사진으로 남겨 편지를 써준 네 덕에 웃음을 지은 나였다.


마법사 키키처럼 신나서 서랍을 들고 달리던 나.

강아지와 산책하다 피를 철철 흘린 날까지 전부

남아버린 날.


머리 뒤에 후광이 빛난다 했나.

우린 운명이라며 문득 결혼하잔 말을 내뱉은 너.

그러다 문득 헤어지잔 말을 꺼냈다.


군인은 불같다 했나.

‘우린 정말 안 맞는 것 같아요!’라는 말에도

서슴없이 다가온 너.

네로라는 노란 눈의 고양이를 키운 탓에

한동안은 너무도 사랑했고,

이후 몇 달은 너무도 싫어한 검은 고양이.


‘제가 연락해도 될까요?’라는 말 한마디와

너를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는 나의 말을

전부 듣고 있던 너와의 만남.


네 덕에 회색을 좋아하게 된 나는

여전히 회색 옷을 입고 지낸다.


지친 눈가에 미소가 피어날 때면,

너의 눈에 입을 맞추며 사랑한다 말하던 나.


검은색 티였나.

크로스로 맨 가방끈까지

그리도 잘 어울리는 너였다.


널 너무도 좋아한 나 때문에

울며 겨자 먹듯 날 놓지 못했던 너.

결국 헤어지잔 말에 끝을 보았지.

이후에도 몇 번을 닿고자 한 너는

어떠한 근황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라오스. 먼 타지에서 만난 우연한 이.

폭포를 보고 올 때까지도 별 관심 없던 이는

비포 선 라이즈의 주인공이자, 첫 선셋이었다.

우연과 우연이 만난 인연이기에

더 나은 타인을 만난다 했나.

그렇게 네가 떠났다.


가끔은 짐승 같기도, 가끔은 비버 같기도 했던 너.

답답하고도 서글서글한 너의 얼굴을 좋아했다.

작은 덩치에 반바지 속 다부진 허벅지에 반해 너를 만난 날.


그때부터일까,

우울함을 품은 네가 좋았다.


수면제를 먹고, 위스키 한 잔 기울인다는 이야기에

시선이 간 건.

안정적인 삶에 대한 권태였을지도.


육지를 떠난 날,

그토록 내가 사랑한 청록색.

영화 같은 색으로 만나는 이를 소개한 너였다.


빨간 볼이 스트레스라던 너.

어쩌면 사짜 같은 웃음에 빠져버렸다.

어두운 밤바다를 바라보며 보낸 하루.


그때부터였나. 해바라기를 미워하게 된 건.


나를 떠나 행복했던 사람들,

운명을 찾았다는 말에 또 한 번 네가 미워졌다.


늘 내 주위를 맴돌던 너는

내 곁에 남기만을 바랐다. 욕망에 홀린 이들에게 상처받은 날.

나는 네 손을 잡았지.


쓴맛의 커피보다 더욱 쓴 건

네 몸에 남은 악취였다.


잘 지내냐는 물음에 매우 잘 지낸다 말하던 너.

그때부터였나 전 애인의 안부를 묻지 않은 것은.


덕분에 나는 아주 잘 지내!라는 말을 싫어해.


하루종일 대화를 나눈 밤.

너와의 모든 494분의 시간에 담긴 마음들.

너에게만은 전부 말하고픈 마음에 벅벅 긁어 꺼낸 조약돌.

가득 던지고 또 던지니 깨져버린 어항.


뭐가 미안한지도 넌 모를 테지.

그저 핑계 대고 싶었을 테지.


그렇게 너에 대해 쓰기로 했다.

기억도 안 나던 너에 대한 글.


온몸을 떨며 거짓을 말하던 너와,

그저 장난일 뿐이라며 나를 외면한 너.


양 귀를 뚫고 술을 말던 너와,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던 순수함을 가진 네 모습.


금기의 영역을 깨려 한 너와,

모든 걸 나와 함께 하고자 한 너까지.


전부.


전부 남겨보기로 했다.


어쩌면 나의 회고록.

나의 수치 혹은 헌정곡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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