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민영화를 향한 큰 한 걸음
2024년 2월 윤석열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한 이후로 반년이 넘게 지났다. 의학이란 분야로 진로를 정하고 나아가고 있는 나는 자연스레 이 정책에 대해 그리고 그 여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알아보고 있었다. 여러 의견과 매체를 통해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그에 대해 몇 가지 기록해보려 한다.
의대정원을 확대해 의사 수가 늘어나면 피부미용 같은 수익성이 높은 비바이탈과의 의사수가 과포화되면서 경쟁으로 인해 의료비가 낮아지고 그로 인해 수익성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바이탈과의 인기가 자연스레 올라갈 것이다. 즉 정부에서 말하는 낙수효과로 인해 바이탈과의 의사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이다.
아주 이상적이다. 유토피아적인 발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현재 의료대란이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다.
근본적인 문제는 왜 바이탈과가 비인기과가 되었는지이다.
첫째로 턱없이 적은 수가. 대부분 행위별 수가제가 적용되는 우리나라는 의료행위를 하는 만큼 돈이 들어온다. 하지만 우리나라 건강보험체계는 철저한 정부의 통제 아래 있고 대부분의 바이탈과 진료비는 이 정부가 통제하는 건강보험에 속해있다. 문제는 정부에서 측정해 놓은 바이탈과들의 수가가 턱없이 적어 의료행위를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바이탈과에서 진료를 하면 할수록 병원수익이 떨어진다. 옛날에 대학병원의 주 수입원이 주차장과 장례식장이라는 기사의 내용을 보고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이국종 교수가 외상센터장 자리에서 내려온 것도 이런 기형적인 수가 시스템에 의해 병원장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내려온 것이 아닌가.
둘째로 의료소송. 비록 상고심에서까지 의사들의 무죄판결이 나왔지만 이대목동병원 사건을 이래로 바이탈과 중에 하나인 소아과가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환아를 최선을 다해 치료해도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환아가 사망했을 때 의사가 감당해야 하는 후폭풍.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했지만 결국 환자를 살리지 못한 바이탈과 의사들은 실제 의료범죄를 저지르는 의사들과 다를 바 없이 의료 소송에 걸릴 수도 있다는 걱정. 소송에서 무죄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도 그 기간 동안 감내해야 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그 외 비용들은 바이탈과에 지원하지 않을 이유로 충분했다.
그리고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피해
https://www.youtube.com/watch?v=kqRL5wB3LY8
https://www.youtube.com/watch?v=JFItizl4ow8
한창 이 일에 대해 조사하면서 접하게 된 유튜브 채널인데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 주신다고 생각한다. 잘 몰랐던 급여와 비급여 진료에 대한 내용도 이 분을 통해 알게 됐다. 대강 요약하자면 진료를 볼 때 대부분 비보험진료와 보험 진료가 같이 이뤄지는데 의사들이 늘어나 경쟁을 통해 의료비용이 낮아지는 것은 비보험 진료에만 적용되지 보험 진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국가가 통제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개개인이 부담하는 의료비용이 낮아졌을 테니 의료수요는 증가할 것이고 그로 인해 보험진료 역시 늘어나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금액이 늘어나고 결국 보험공단 기금 고갈이 가속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미국처럼 민간 의료보험사들의 몸집과 영향력이 비대해지고 결국 국민들의 보험료/의료비용 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의료 민영화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해결책으로는 바이탈과에 대한 수가인상과 의료행위에 있어서 의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법 체계.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실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수가에 관해서는 국민들의 부담을 가중하지 않으면서 수가를 인상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건보료를 올리거나 매 진료 본인 부담금이 올라가는 것 둘 중에 하나일 텐데 둘 모두 국민들이 동의 할리 없으니 말이다. 위 링크의 의사분께서 제시한 경증환자의 상급의료 접근성 축소 및 보험급여 회수 제한이 그나마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보이는데, 탁상공론만 하고 있는 정부 쪽에선 이런 방향을 생각할 능력이 없어 보이고 의사들 역시 반대만 하고 있을 뿐 해결책을 제시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의료소송으로부터 의사들을 보호해 줄 법 체계 역시 기득권층에 있는 의사들의 밥그릇을 깨야 한다는 89.3%의 국민들의 여론으로는 만들기 불가능해 보인다.
의사들의 파업과 전공의들의 사직. 이 방법이 정부에게 대항할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지금 철옹성 같은 정부를 설득시키기엔 이 방법 말고 딱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졸지에 "낙수의사"취급을 받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사직의사를 표한 전공의들 중 절반은 사직서 수리가 된 상태이며 이미 2025년도 의대 수시 지원자 수는 작년대비 15000명이 증가했다. 정부는 현재 밀고 있는 의료 정책을 재 타협할 생각이 없고, 의료계는 단일화가 되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할 생각이 없으며 이미 포기하고 각자도생의 길로 가고 있다. 현재 소아과에 이어 응급의학과의 고질적인 문제도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데 한국에 대부분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는 나 역시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비통하기 그지없다.
사실 의료민영화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순 없다. 미국이란 나라가 어쨌든 의료민영화란 시스템으로 지금까지 선진국으로써 굴러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현재 의료체계에서 민영화 시스템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지가 본질적인 논점일 것이다. 떨어지는 의료 접근성, 잔인할 정도로 비싸질 의료비용, 그로 인해 보여질 의료 빈익빈 부익부. 이것들을 대한민국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까? 아니면 준비는 되어있지 않지만 결국 변화할 의료 사회에 맞춰 억지로 적응해 나갈 것인가?
한국의 의료시스템과는 이제 거리가 먼, 현재 미국 의대를 준비하고 있는, 그리고 의료 민영화 시스템 속에서 의료행위를 할 꿈을 꾸고 있는 한 25살 미국인의 생각정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