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ad to Pathology - Prologue
“우와… 사람 몸속은 저렇게 생겼구나..!! 나도 나중에 커서 저런 일 하면 진짜 좋겠다.”
중2시절의 내가 EBS “명의”라는 의학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수술장면을 보며 했던 혼잣말이다. 그때 처음으로 의학이라는 분야를 직업으로서 이해하게 되고 병리학이라는 분야에 대해 알게 되어 그때 이래로 지금까지 병리학자라는 의사를 꿈꾸며 달려왔다.
하지만 이제 난 그 꿈을 내려놓고 다음 챕터를 향해 나아가려 한다.
25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였던 금요일에 텍사스 의대들의 합격생 발표가 일괄적으로 이루어졌다. 합격이 되려면 원서 작성 이후 발표날 전까지 의대에서 인터뷰 제의가 들어와야 한다. 즉, 면접 제의가 들어오지 않으면 자동 불합격인 셈이다. 내가 이 케이스였고, 그래서 난 발표날 별 긴장감이 없었다. 2년 전 첫 번째 의대 도전 때는 의대 한 곳과 인터뷰까지 했었지만 그때보다 더 나은 이번 원서로는 (물론 내 기준에서) 면접제의 하나 오지 않아 약간의 억울함과 헛헛함은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텍사스를 제외한 타주 의대들은 5월 말까지 인터뷰가 이루어지기에 엄밀히 말하면 내 의대를 향한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조금씩 타주 의대에서도 조금씩 불합격 이메일이 오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딱히 큰 기대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 불합격이 큰 좌절이 되진 않는다. 그 이유는 여럿이 있다. 일단 두 번째 도전을 시작하기 전, 난 이미 이번 도전이 마지막이라는 마인셋을 가지고 시작했고 그렇기에 내가 이번에 준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보자는 다짐을 하는 글을 이곳에 썼었다. 그리고 난 충분히 이번 도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했다고 생각한다. 저번 지원서에 제일 부족했다 생각했던 의학분야에 대한 경험은 medical assistant와 research assistant라는 직업을 각각 1년씩 하며 경험을 쌓아 자소서에 쓸 거리를 풍부히 만들었고 그 덕에 같이 일했던 의사분들께 질 좋은 추천서 역시 받을 수 있었다. 유일하게 다시 하지 않은 것이 MCAT을 다시 치르지 않은 것이었지만 이미 세 번의 시험동안 내 120%를 쏟아부었기에 다시 볼 이유가 내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에 경쟁력이 크지 않았던 내 MCAT점수가 불합격의 가장 큰 원인이라 생각되긴 한다). 그렇기에 이번 지원서에는 후회가 남지 않는다. 주관적인 요소가 너무 많은 미국 의대 입시 시스템이 좀 야속할 뿐이다.
이 글의 본론이자 두 번째 이유로는 의사가 아닌 다른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Pathologists’ assistant라고 하는 직업. 내가 알기로는 이 직업은 한국에 따로 존재하지 않고 병리과 레지던트들이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임상병리사라는 비슷한 직업이 한국에 있는데 엄연히 다른 직업이다. 난 Pathologists’ assistant를 현재 research assistant로써 일하기 전까지 존재를 몰랐다. 그래서 이 일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아주 기분 좋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애초에 병리과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나아가 그게 뭔지도 모르는 친구들이 내 주변에 많았다. 그래서 난 Pathologists’ assistant들이 하는 일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한국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던 클리셰에 비교해 얘기한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왜 인지 자주 아프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의사와 면담을 하는 장면에서 의사들이 자주 하는 멘트가 있다:
“자세한 건 조직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암인 것 같습니다…”
이 대사에서 그 ‘조직검사’를 하는 사람들이, 미국에서는, Pathologists’ assistant들이다. 더 자세한 건 다른 글에서 써보겠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다.
이 두 이유를 종합해 보면 난 의대 입학을 위해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고, 이 길이 닫히고 그 다음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길을 찾아냈기 때문에 이번 불합격이 큰 상처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음, 솔직히 얘기하면 미련이 아주 0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놈의 의대 입시시험 때문에. 하지만 이제 내가 바라보는 이 plan B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의사에 대한 미련을 깨끗하게 지워버릴 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그리고 엄밀히 얘기하면 난 처음부터 ‘병리학’이라는 의학 세부분야가 좋았던 것이지 ‘의사’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지금까지 병리학이라는 분야에서 일을 하려면 병리학자라는 ‘의사’가 되어야지만 가능한 것인 줄 알았지만 이제 의사가 아닌 다른 직업으로도 병리과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의사에 대한 미련이 더더욱 없을 수밖에 없다.
의대 준비를 접을 확률이 크다는 말에 제일 놀란 건 부모님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준비해 온 길을 너무 쉽게 저버리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내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고, 살면서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되고 바뀌기도 한다. 부모님 기준에 Pathologists’ assistant들의 연봉이 그리 높지 않은 것을 걱정하셨지만 난 돈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좇는 것이 더 중요하고 위의 두 이유를 같이 설명드렸더니 결국엔 납득을 하셨다.
젊을 때 많은 경험을 해 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 경험을 통해 한 번 더 깨닫게 된 것 같다.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됐고, 새로 시작한 직업이 본래 내가 뜻했던 것보다 더 나아가 내게 새 길을 제시해 주는 경험을 하게 됐다. 갑자기 떠오른 나이키의 슬로건인 “Just do it!” 이 짧은 구절이 어쩌면 경험의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는 깊은 의미를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