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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범 Nov 10. 2019

사과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면, 탐정이 된다. 탐정은 두 남녀가 이별하게된 원인을 파헤친다. 탐색은 안과 밖을 가리지 않는다. 개인들에게서 실마리를 찾아내기도 하고, 그 둘이 처했던 상황들도 충분히 고려한다. 하지만 원인은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여러 과거들이 관계에 축적되고, 그 축적된 이야기들은 화약이 된다. 어느날 뇌관이 터지면 다이너마이트들이 연쇄작용을 일으켜, 이윽고 펑펑펑 터진다. 끝난단 얘기다. 그러니 원인은 없다. 있다면 모든 시간과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대체로 이 사실을 모른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우리가 구월에 십며칠쯤 헤어졌으니, 내가 수화기에 소리를 지른건 구월 초였을 거다. 내 생일이 막 지났고, 보라색 노을을 호텔 8층 야외뷔페에서 바라봤으며, 빵과 바디스프레이를 받은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다. 왜 소리를 질렀는지, 사실 기억이 안난다. 얼큰하게 취했던 기억만 남았고, 천근이 가슴팍에 떨어진 듯 한 불안함과 초조함이 혀끝에 남았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아마 이 고함이 뇌관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려 삼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비루한 기억력이 이별하게 된 이유라고, 추억들을 증발시켰던 나쁜 태도가 상대에게 더 이상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모습으로 비춰졌다는 게 그 이유라고 여겼다. 수년간 그랬다. 나라는 탐정은 모자랐던 태도를 원인으로 삼아 내 앞에 바쳤다. 나는 그 제물을 한참을 씹어 먹었다. 그것도 수년간. 그리고 꽤 좋은 사람이 됐다고 여겼다. 이 생각이 오늘 비로소, 수업 중에 몰래 읽는 에세이로, 어느 여자가 남자에게 보낸 칼날 같은 말로 박살이 났다.      


“알아요, 석원씨 마음. 하지만 저는 석원씨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성적으로 그 상황을 해결하려 하거나 말로 어떻게 해보려는 노력 없이 무작정 달려드는 모습에서 남편의 그걸 봤어요. 그리고 전 그게 절대로 안 잊혀질 것 같아요. 도저히”   

   

이성을 잃은 적이 두 번 있다. 그 중 하나가 삼년 전 구월이다. 어쩌면 그 모습에서 네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습을 봤을 수 있다.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이미 연쇄폭발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날 나의 역정은 폭발의 끝에 있었을까.      


지금은 이 말들이 한낱 어린 깨달음으로 비춰질까 두렵다.


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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