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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llii May 31. 2023

열등감 뒤에 숨은 우월감

열등감. 자존감. 자기 수용

성장의 원동력이 무엇인가? 를 생각해 볼 때 나의 동력은 ‘열등감과 자신감’이었다. 듣는 이들은 열등감이 있는데, 어떻게 자신감도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면 내 대답은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사실이야 “라고 대답한다.  정답은 뒤에 나온다.


열등감은 상대와 나를 비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열등감을 없애기 위해 비교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가능한 것일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비교하고 경쟁한다. 심지어 동물조차도 주인의 사랑을 더 많이 받으려고 질투를 하고, 나무도 태양을 더 받기 위해 옆의 나무와 경쟁하며 더욱 높이 자란다. 비교하는 마음은 어쩌면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열등감이 동기가 되어 어떤 결과물이 만들어진다. 동기는 비교하는 마음이었지만, 결과는 성장이다. 그것만으로 열등감의 존재를 환영해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열등감은 시시때때로 자존감의 목을 조르기 때문이다.  자존감의 목이 조여지면 나약한 생각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자기 수용 은  자신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권장된다. 자기 수용은 자존감과 연결되어 있다.  “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개별적으로 어떤 이에게는 심리학적 지식만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켜켜이 쌓인 아픈 경험과 무의식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마주해야(극복, 이해) 비로소 자기 수용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개인마다 자기 수용의 방법은 달라져야 한다.


열등감의 또 다른 얼굴은 우월감이다.  우월감에는 타인을 열등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 열등감 안에는 우월한 내가 이것밖에 안되다니 하며 절망하는 자신이 있다. 우월감의 시선으로 타인을 내려다본다. 이내 타인이 갖고 있는 것을 내가 가지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열등감으로 표출된다.


몇 달 전 류시화의 책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읽으며 그때 어떤 문장이 그런 깨달음을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책에 노트를 해 놓았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2/11월/3일 ”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브롤리-


그때 느꼈던 감정은 “자유”, “해방감”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또는 사회에서 높이 평가하던 어떤 잣대들을 내려놓고 타인을 바라본다. 그를 대하는 나의 행동과 시선에도 어떤 긴장이나 선망이 사라진 것을 느낀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 를 알 때 더 이상 남과 비교하기를 멈추고, 타인에게 씌었던 각종 프레임들을 거두고, 나를 어떤 가치에 끼워 맞추려고 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의미가 없어지며, 나는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게 된다. 자기 수용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나 스스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명명할 때 내 존엄과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고자 했던 열망을 버리고 그냥 ”나 “로서 존재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열등감도 우월감도 사라진 그냥 온전한 존재로서의 나!  류시화 책의 문구를 빌려 본다. “넌 불완전해. 언제까지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넌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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