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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이드 한 장으로 버텼던 세미나

by 최종일

예전에 한 고객사에서 세미나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급하게 요청받은 자리였고, 고객 정보도 거의 없었습니다. 영업대표는 “우리 API Gateway 솔루션 기능만 간단히 소개해 달라”라고 했고, 저도 그에 맞춰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세미나가 시작되고, 고객 담당자의 개회사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왔습니다. “마이데이터 사업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 전문가를 모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고개를 들어 영업대표를 쳐다보았고, 그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주제가 완전히 엇나간 상황이었죠. 간혹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고객의 요청이 영업에게 잘못 전달되거나, 준비된 내용과 고객 기대가 엇갈리는 경우 말이죠.


특히 마이데이터 같은 복잡한 사업은 단순한 솔루션 소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업무 요건에 대한 깊은 이해, 최적의 아키텍처 설계, 실전 노하우가 함께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당시 저는 솔루션 기능만 준비해 간 상황이었습니다. 순간 고민에 빠졌습니다. '지금 이걸 그대로 발표해도 괜찮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능 설명만으로는 부족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준비해 온 기능 소개 부분을 모두 넘기고 마지막 슬라이드, 한 카드사의 구축 사례를 띄웠습니다. 한 장짜리 요약 슬라이드였고, 프로젝트 개요, 주요 이슈, 해결 방법까지 간단히 정리돼 있었습니다.


전문 용어로 '후달리는' 상황을 어떻게든 해소해 보려고 구축 사례를 매우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타사 사례라 상세한 자료는 없으니 양해해 달라는 핑계를 대면서요. 그렇게 20분가량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질문을 많이 던졌습니다.


▫️ 이 카드사는 메시지 크기 결정에 애를 먹었습니다. 귀사는 얼마로 결정하셨나요?

▫️ 로그 관리 정책은 어떻게 정하셨나요?


고객의 상황을 물으며, 늦게라도 요건을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렇게 위태롭게 진행되던 세미나는 예상외로 2시간 넘게 이어졌고, 고객 담당자들이 직접 칠판에 그림을 그리며 자신들의 환경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세미나는 해결책을 찾는 워크숍처럼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능은 지원되죠?'라는 질문이 나오면, 저는 앞 슬라이드로 돌아가 우리 제품 기능을 자연스럽게 설명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고객도, 저도 매우 만족스러운 세미나였습니다. 평소와 같이 기능을 쭉 소개하는 세미나로 진행했다면 이런 깊이 있는 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이 세미나를 통해 다시금 느꼈습니다.


▫️ 고객은 기능 소개보다 ‘해결책’을 듣고 싶어한다.

▫️ 고객은 실제 성공 사례를 알고 싶어 한다.

▫️ 고객은 발표를 ‘듣는 것’보다 ‘참여하는 것’을 선호한다.


세미나에서 고객에게 경험과 참여를 제공해 보세요. 그러면 세미나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진짜 협업의 시간이 됩니다.





#presales #프리세일즈 #세미나 #경험과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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