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송태욱 옮김, 문학동네
파문의 위력은, 파문당한 자와 관계를 지속하면 그 사람도 파문당해 그리스도교의 적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중세 사람들은 신앙심이 깊었다. 당연히 가신과 병사들은 파문당한 주인을 떠난다. 즉 파문이란 사회로부터 전면적인 추방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들은 때때로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분열을 반복했지만 최종 목표 앞에서는 언제나 단결했다. 그것이 1차 십자군이 성공한 요인이었다.
인간 세계에서는 한 나라의 인재 배출과 인재 고갈의 순환이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시기에 일어나지는 않는다. 한쪽은 인재 고갈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인재 배출의 시대를 맞이하는 일이 상당한 비율로 일어나는 것이 인간 세계이다.
“이슬람교도는 악마의 화신이다. 그들에 대한 해결책은 한 가지밖에 없다. 박멸이 그것이다. 죽여라! 죽여라! 그리고 만약 필요할 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죽는 것이다.”
3차 십자군의 리더였던 사자심왕 리처드의 행동은 종종 아무 계획 없이 이루어지는 듯 보인다. 실제로 그는 그렇게 무슨 일을 시작하기도 했지만, 그 결과는 어쩐 일인지 장기적인 이익으로 이어지곤 했다. 왜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리처드는 명예를 걸고 돌진하는 한편 적당한 지점에서 타협할 줄도 아는 남자였다는 사실이다.
“서로 협력하여 뭔가를 이루겠다고 결심한 사람들 사이에서 우정만큼 귀한 것도 없고 단결만큼 명예로운 것도 없으며, 융화와 조화만큼 감미로운 것도 없다.
반대로 적대의식만큼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것도 없다. 적대의식은 단결을 무너뜨리고 자기편 사이의 존경심을 잊게 하여 모두를 위험에 빠트리는 싹을 틔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지애로 묶이고 서로에 대한 존경심으로 강화된 조직도, 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적 충동만으로 와해될지 모르는 일이다."
인간, 특히 다른 사람 위에 서는 자에게는 품격과도 비슷한 무언가가 요구된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해서는 안 된다는 선 같은 것으로, 이 선을 넘어서면 바로 인망을 잃게 된다.
코라도는 난세의 지도자에게 필요한 자질을 대부분 갖추고 있었지만 그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프리드리히는 아무리 평화가 목적인 교섭이라 해도 무방비 상태로 이룰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교섭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군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역사에 대한 글을 쓰면서 통감하는 것 중 하나는, 정보란 그 중요성을 인식한 자에게만 올바로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십자군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이 점에 대해선 그리스도교도든 이슬람교도든 예외가 아니었다. 정보에 정통한 교황이나 왕, 제후가 있는 반면 그 방면에 어두웠던 교황이나 왕, 제후도 있었다. 베네치아인은 정보를 중요시했고, 제노바인은 그렇지 않았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렇게 말했다.
“현실의 모든 것이 누구에게나 보이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현실만 본다.”
보고 싶지 않은 현실도 직시해야만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전쟁의 역사는 전투로만 점철되지 않는다. 여러 차례의 공생 시도와 그에 이은 파탄, 그럼에도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려 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조직은 항상 복수의 선택지를 손에 쥐고서 어느 한쪽이 강력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중세 유럽에서 대국으로는 신성 로마제국과 프랑스 왕국을 들 수 있는데 교황은 프리드리히 황제에 대한 적개심으로 지나치게 프랑스 왕의 힘을 강화 사키는 데 도움을 줬다. 그 결과가 '아비뇽 유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