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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Oct 15. 2020

추락

어디까지 추락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어디까지 추락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존 쿠시의 소설 『추락』은 흑인에게 정권이 이양된 시기, 남아프리카가 배경이다. 작가는 남아프리카의 네덜란드계 백인으로 그들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가 아닌 영어로 이 작품을 썼다.


이름도 특이한 작가 존 쿳시의 소설을 읽게 된 건 번역가 왕은철 때문이다. 존 쿳시란 이름을 그의 칼럼 어디에선가 봤기에 도서관에서 만난 책이 낯설지 않았다. 이 책은 2000년 초판이 발행되었고 이후 3쇄에선 쿳시가 노벨 문학상을 타면서 표지에 ‘200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 이란 표제가 들어간 걸로 보인다.


잘 나가던 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루리는 성적 충동을 자제하기 힘들다. 규칙적으로 돈을 주고 여자를 산다. 그러다가 여학생과 관계를 가지게 된다. 성폭력으로 보일 수 있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 루리는 여학생과의 스캔들로 학교를 쫓겨난다. 사죄하면 상황을 호전시킬 수도 있지만,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런 행위는 남자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루리는 동부 케이프에 사는 딸의 농장을 찾아간다.


그의 딸 루시는 농가에서 꽃과 채소를 키워 팔며 버려진 개를 돌보는 소박한 삶을 산다. 루리가 딸의 집에서 산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괴한들이 침입해 그를 폭행하고 딸을 강간한다. 루리는 화상을 입고 딸은 임신한다.

이웃에는 딸의 농사를 거들어주는 건장한 흑인 가족이 살고 있었다. 루리는 그가 강간을 사주했다고 의심한다. 그들은 왜 이웃 여자, 게다가 레즈비언인 루시에게 그리 잔인한 행동을 했을까?


이건 뿌리 깊은 뭔가가 있어. 금방 알 수 없어. 천천히 오랫동안 생각해 봐야 해.

루리는 생각한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보면 그들이 백인인지, 흑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갈등 상황에는 반드시 그들의 인종이 나온다. 전혀 다른 두 종족이 뒤섞여 살아가기에 소설에는 비극적인 역사가 얼룩처럼 숨어있다. 수백 년에 걸친 백인 식민주의는 이 소설 갈등의 원인이다. 백인들이 가지는 위기의식, 흑인들의 적대감.




직위와 재산을 잃고 추락하면서 루리는 차츰 생각이  바뀌어간다.

처음, 루리는 성희롱에 대해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로스가 들어왔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그 후로 나는 똑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 나는 에로스의 노예가 됐습니다.

-이것이 우리한테 하는 변명입니까? 절제할 수 없는 충동이었다, 그 말이오?


-나는 나한테 씌어진 모든 혐의에 유죄를 인정하오.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는 것과 당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어요. 당신은 유감으로 생각합니까? 당신이 했던 일을 뉘우칩니까?


-아니오. 나는 이번 경험으로 풍부해졌소.


충심으로 사과하라는 대학 측의 요구를 루리는 유죄 인정만으로 충분하다고 거절한다. 사람들이 그를 거세시키려 든다고 생각한다. 루리는 오만하다.


루리는 개를 안락사시키는 일을 돕게 된다.

그는 지금까지 동물들에게 무관심한 편이었다. 차츰 그는 죽은 개의 명예를 지키는 일을 할 정도로 어리석어진다. 예전의 기준에 의하면.


개와 총, 오븐 속 빵과 흙 속의 농작물.

딸의 평화로운 세계가 유린당하자, 그는 침입자들을 사주한 것으로 보이는 이웃 남자에게 분노한다. 폭행. 이것이 그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예, 그것은 폭행이었습니다. 예, 그것은 유린이었습니다.

그는 상대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고 싶었다.


시간이 흐른 후 루리가 딸과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은 너무나 개인적이었어요. 그들은 제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처럼 그 일을 했어요. 그들이 왜 저를 증오했을까요? 저는 그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것은 역사가 그들을 통해 말을 하는 거야. 죄악의 역사가 말이다. 개인적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았을 게다. 그것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거지.

-아버지, 하지만 그것을 달리 볼 수는 없을까요? 만약… 만약 그것이 여기 머무는 것에 대한 값으로 지불해야 하는 거라면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요. 어쩌면 저도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지 몰라요. 그들은 제가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죠. 그들은 자신들을 빚쟁이나 세금 징수원으로 생각하죠. 왜 저는 아무런 값도 지불하지 않고 여기서 살아야 하나요? 어쩌면 그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일 거예요.
-만약 그들이 백인이었으면 너는 그들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을 거다.

-그럴까요?
-너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네가 이야기하는 것엔 새로운 게 있다. 그들은 너를 그들의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 거야.

-노예 상태가 아니라 복종과 종속이겠죠.




추락하면서 루리가 얻게 된 건 무엇일까?


겸손, 타인에 대한 이해, 삶의 이면을 보는 눈?


딸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루리는 자기에게 피해를 입은 여학생과 그 부모를 이해하게 된다.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도 깨닫는다.


-남자니까 아셔야죠. 그건 여자를 죽이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요?

'남자니까 아셔야죠. 자기 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하는 법이 어디 있는가? 그녀도 그와 같은 편인가?'

 

고개를 뒤로 젖히면 하늘의 반만 보인다. 하지만 완전히 뒤로 쓰러져 누우면 하늘밖에 보이는 게 없다. 어설프게 뒤로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지만 완전히 등을 바닥에 대고 누우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밑바닥을 쳐야 올라올 수 있는 힘을 받는다.


루리는 여학생의 아버지를 찾아간다.

여학생의 아버지는 비틀리고 고통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나에게 찾아온 저의가 뭡니까.
-멜라니의 경우에는 예기치 않는 불이었습니다. 그녀가 내게 불을 댕겼습니다. 태워지고(burned) - 타고(burnt) - 다 타버리고(burned up).
옛날에는 사람들이 불을 숭배했지요. 그들은 불이 꺼지도록, 아니 불의 신이 사라지도록 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을 해봤던 겁니다. 당신의 딸이 내 안에 지른 것은 그런 종류의 불이었어요. 나를 다 태워버릴 정도로 뜨겁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진정한 불이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추락하셨죠?
-어쩌면 가끔씩 추락하는 것도 우리에게 좋은 일인지 모르지요. 깨지지만 않는다면. (…) 나는 당신 딸이 겪었던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당신들의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사과합니다.

-당신은 마침내 사과를 했습니다. 나는 그게 언제 나오나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해요. 우리는 발각이 되면 미안해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아주 미안해하는 거죠.
중요한 것은 미안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거기서 어떤 교훈을 얻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미안하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루리는 여학생의 어머니에게 무릎을 꿇고 이마를 마루에 댄다.


이걸로 충분할까? 이거면 될까? 안 된다면 어떤 게 더 있지?




루리는 딸의 집에 머물면서 바이런과 그의 애인 테레사를 주인공으로 오페라 극을 쓰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과 죽음에 관한 실내극으로 정열적인 젊은 여인과 한때는 정열적이었지만 이제는 식어버린 나이 든 남자에 관해 쓰려했다.


처음에 그의 마음을 끈 것은 바이런의 정부였던 젊고 정열적인 백작부인 데레사였다. 하지만 추락을 겪은 후 그는 생각이 바뀐다. 가슴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그는 세월이 흐르고 바이런이 죽은 후 남은, 바이런이 유혹했다가 싫증 낸 땅딸막하고 못 생긴 나이 든 여인, 데레사를 주인공으로 설정한다. 그녀가 바이런과 보낸 세월은 그녀 삶의 최정상이었다. 그녀는 그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노래한다.


나의 바이런(Mio Byron).
나의 바이런(Mio Byron).


지하 세계의 동굴에서 노래가 들려온다. 그녀가 듣고 싶지 않은 단어.


세카(secca), 말라버렸네. 모든 것의 근원이 말라버렸네.


바이런의 목소리는 너무나 희미하다.

데레사는 그녀의 애인을 불러낸다.


나는 당신의 근원이에요. 나를 기억하나요?


그녀를 따라 지하 세계로 내려갈수록 루리가 그녀에게 주려고 생각했던 풍요로운 아리아는 사라지고, 장난감 밴조의 우스꽝스러운 소리가 그녀와 뗄 수 없는 것이 된다. 결국 그를 부르는 것은 에로틱한 것도, 비가적인 것도 아닌 희극적인 것이었다.


그는 생각한다.


'그래, 이것이 예술이다. 이것이 예술의 방식이다! 참으로 이상하다! 참으로 신기하다!'




루리는 우리에 갇힌 개들 중 한 마리를 특별히 좋아한다. 그는 개가 그를 위해 죽으라면 죽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는 한 마리의 양처럼 개를 안고 수술실로 들어간다.


-당신이 한 주 더 살려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개를 단념하시는 건가요?

-예, 이 개를 단념하겠소.


쿳시의 소설에는 의문만 있을 뿐 답이 없다. 저자는 친절하지 않다. 난해한 글을 쓰는 어느 작가는 책이 어렵다고 투덜대는 독자에게 이해할 때까지 다섯 번이든 여섯 번이든 읽으라 했다던가. 이 책도 마찬가지다. 독자는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  


역자 왕은철은 케이프타운의 객원 교수로 있을 때 쿳시를 만나 이 책을 번역했다. 쿳시는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두 번 탔다. 심사위원들은 같은 작가에게 두 번 상을 주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쿳시에게 상을 안겨줬다. 쿳시의 책은 대중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추락’ 이전에 그의 작품 ‘포’를 읽었는데, ‘추락’이 그나마 내겐 읽기 쉬웠다. 하지만 이 소설도 배경이 남아프리카여서인지 갈등 상황과 그 해결이 무척이나 낯설었다. 새로운 풍토에 적응하려면 예전 사고의 틀을 부셔야 한다.  루시처럼.

그녀의 적응은 식민 지배에 대한 빚 갚음, 속죄의 한 형태일까?


흙에 대한 사랑, 집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강간을 사주한 이웃 흑인의 셋째 아내가 되어서라도 그 땅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그녀의 선택을 이해하기엔 나의 고정관념이 너무 뿌리 깊었다. 그녀의 아버지, 루리도 나와 같았다. 우리가 가진 편견의 스펙트럼은 어디까지 뻗어 있는 까?



  #『추락』 존 쿠시, 왕은철 역, 동아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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