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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Oct 26. 2020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

                         

 

몇 년 전 『군주의 거울』(김상근 지음, 21세기 북스)을 읽었는데, 며칠 전 다시 읽으려고 꺼냈더니 책 옆면에 ‘아포리아 시대의 인문학 / 그리스, 키루스의 교육’이라 쓰인 게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


그리스는 약 1200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사람들은 섬과 섬 사이를 항해하다가 어떤 절체절명의 위기 상태에 직면하면, 이를 ‘아포리아’라고 했다. ‘아포리아’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 즉 길 없음, 출구 없는 막막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스는 세 차례 아포리아를 겪었다.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소크라테스의 죽음.


참혹한 고통의 시대를 겪은 그리스인들은 깨달음을 얻었다. 참된 리더가 있을 때 나라는 흥했고, 가짜 리더가 나타났을 때 나라는 망했다. 그들은 실망과 분노를 넘어 진정한 리더를 찾기 위해 아래의 책들을 썼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라톤의 『국가』,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

김상근의 저작『군주의 거울』은 위의 고전들을 통해 그리스인들이 겪은 아포리아와 당대 리더의 모습들을 제시한다.


중세 유럽인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 중 필독서를 뽑아서 왕자와 귀족 자제들에게 리더십을 가르쳤다. 이 책들은 점차 ‘군주의 거울’이라는 문학 장르로 발전했는데, 후일 리더가 될 사람들은 반드시 이 책들을 읽어야 했다. 군주의 거울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생각해낸 인물은 그리스 출신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였다.


“이런 경우라면 플라톤은 어떻게 했을까?”

질문을 던지며 리더가 될 사람은 이와 같은 거울 앞에서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천한 말을 자제하고, 정념의 발동을 꺼야 한다고 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페르시아 왕 키루스가 등장하는 부분은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져서 화형 당하는 순간이다. 크로이소스 왕은 14년간 왕국을 통치했지만 14일간의 전투로 패배했다. 죽음을 맞이한 크로이소스는 현자 ‘솔론’을 떠올리며, “오, 솔론! 솔론! 솔론!” 세 번 외친다. ‘솔론이 누구지?’ 궁금해진 키루스 왕이 형을 정지시키고 물었다.


이전에 크로이소스 왕은 아테네의 현자 솔론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물었다. 솔론은 “인간은 전적으로 우연의 산물이므로 훌륭하게 생을 마치기 전에는 알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 불타는 장작 위에서 크로이소스 왕은 솔론이 떠올랐다. 키루스 왕은 황금과 권력이 행복의 필수 조건이라 여겼던 한 인간의 깊은 회환을 보며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화형을 중단시킨다.


『역사』에는 세 명의 리더가 등장한다. 크로이소스 왕과 크세르크세스 왕,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다. 그들은 한 때는 잘 나가다가 후반에 그릇된 행동을 일삼게 된 리더들이다. 왜 헤로도토스는 이런 인물들을 보여줬을까? 그는 군주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 리더의 위치에 오르면 참혹한 전쟁, 도탄에 빠진 백성, 아포리아에 처한 사회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역사』의 마지막 장에 키루스 대왕이 다시 등장한다. 왕이 여러 나라를 정벌하자 한 신하가 제국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왕은 그럴 경우 지배 민족에서 피지배 민족이 될 각오를 하라고 경고한다. 결국 후일 페르시아 제국은 크세르크세스 왕 시대에 그리스에 패하고 만다. 오만한 리더의 잘못된 선택은 실패로 마치고 만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투키디데스는 ‘왜 아테네는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을까?’ 란 질문에 답하기 위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집필했다. “어떤 나라나 조직이 흥하고 망하는 이유는 다 사람 때문”이라는 게 이 책의 메시지다. 아테네는 페리클레스 때문에 흥하고 그의 조카 알키비아데스 때문에 망한다.


페리클레스는 미래를 예측하는 식견이 있었다.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 공동체 일원을 존중하고 재물에 초연했던 지도자였다.

그는 시민들이 지나치게 자신을 과시하면 이를 경계시켰고, 반대로 지나치게 낙담하면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아포리아 시대의 지도자는 거친 파도로 흔들리는 배 위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물질적 풍요가 가치 선택의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함께 목격되는 것은 ‘몸의 숭배’ 현상이다. 황금이 우선하는 사회에서는 이른바 ‘몸짱’과 ‘얼짱’이 각광을 받는다. 금광에서 금이 채굴되자 황금에 눈이 먼 아테네 청년들은 테세우스를 숭배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크레타 섬에서 괴물 미노타우루스를 물리쳤던 테세우스의 용기를 닮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의 근육질 몸매를 숭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134p


외모 지상주의가 팽배한 이 시기에 물질에 정신을 팔지 않았던 가난하고 못 생긴 소크라테스가 등장한다. 잘난 사람이 주목받는 세상에 못 생긴 사람들은 대체로 위축되기 마련인데, 소크라테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고매한 영혼은 아테네의 정신으로 불렸다.  


보병으로 징집되어 포티다이아 전투에 참전한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와 3년간 같은 막사를 썼다. 그들은 ‘파이데라스티아’의 관계였다. 이는 덕망을 갖춘 어른이 어린 소년과 함께 생활하며 그를 지도하는 관계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탁월함’은 주로 신체의 아름다움과 군사적 용맹을 뜻했다.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소크라테스는 이런 탁월함의 결과가 세상을 끔찍한 곳으로 만들었다는 걸 깨닫고 개념을 수정한다. ‘지혜를 추구하는 삶’이 탁월함의 새로운 개념이 되었다.


이 시기 아테네에서는 6분 연설이 인기를 끌었다. 이 시간 안에 기승전결을 갖춰 논리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어야 했다. ‘말 잘하는 사람’의 시대에 소크라테스는 ’ 질문하는 삶‘을 살 것을 촉구했다. “캐묻지 않는 삶을 사는 인간은 살 가치가 없다.” 황금만능 시대에 그는 정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삶을 선택했다.


펠로폰네소스 종전 후 아테네를 접수한 스파르타는 30인 참주 독재 정치를 펼쳤다. 아테네의 민주파 시민들이 이들을 전복시켰다.

놀라운 것은 소크라테스를 고소한 사람들이 바로 이 아테네 민주파 시민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조국을 배신한 알키비아데스의 스승이었다는 이유로 소크라테스를 체포했다.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를 바꾸는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그 성공으로 인해 교만해져서 판단력을 잃게 되는 것'을 '휴브리스(Hubris)'라고 불렀다. 이는 그리스 어원 'hybris(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오만)'에서 나온 용어다. 새로이 기득권이 된 아테네 민주파는 소크라테스를 죽임으로 자멸하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아테네가 철학에 범죄를 저지른 첫 번째 사건이다. 아테네는 슬픔과 자괴감으로 치명적인 아포리아가 된다. 가장 이상적인 문명사회였던 아테네에서 현자의 죽음을 겪게 된 플라톤은 고민에 빠졌다.


과연 이상적인 국가란 어떤 나라일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런 집단적인 아포리아 상태에서 벗어나 이상적인 문명국가를 만들 수 있을까? 이상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통치자를 가져야 하고, 또 그런 이상적인 통치자를 길러내기 위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까? 등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상 국가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담겨 있는 책이 『국가』이다. 153p


플라톤은 자기 시대의 아포리아의 원인은 전쟁이나 독재정치가 아니라고 봤다. 그는 아테네인들을 동굴의 암흑에 갇혀 있는 죄수들로 여겼다. 앞만 바라볼 뿐, 방향을 돌려 뒤를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 본질이 아닌 것을 본질이라 믿는 사람들, 반짝이는 것은 모두 금이라 믿는 사람들의 무지와 착각이 아테네의 아포리아를 불러왔다고 생각했다.


소크라테스는 쇠사슬을 끊고 몸을 돌려 동굴 밖으로 나간 최초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이데아, 즉 본질을 본 사람이다. 그러나 동굴의 어둠 속에 갇혀있던 아테네인들은 그런 자유로운 영혼이 위험한 존재라 여겼고, 결국 그에게 죽음을 안겼다. 이런 무지와 착각이 아테네의 아포리아를 초래했다. 163p


탁월한 품성을 가진 통치자들은 현실에 보이는 감각의 세계를 실재라 믿지 말고 몸을 돌려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으로 상징된 본질을 보아야 한다. 충분히 태양, 이데아를 본 뒤에는 반드시 몸을 돌려 동굴 속으로 돌아와 쇠사슬에 묶여 있는 동료의 쇠사슬을 스스로 풀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 플라톤이 말한 아포리아 시대 군주의 거울이었다.




그리스의 마지막 군주의 거울은 거울 장르의 최고의 책으로 리더십에 대한 깊은 성찰이 들어있는 지혜의 책 『키루스의 교욱』이다.

이 책의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크세노폰이다. 그는 용병으로 페르시아 내전에 참전해 온갖 고생을 다 겪었다. 전쟁 참여 이력 때문에 배신자로 추방된 그는 스파르타 왕의 도움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키루스 대왕은 고대 근동의 문헌에 ‘왕 중의 왕’으로 표기된 인물이다. 배타적인 유대인조차 그를 ‘기름부음 받은 자, 메시아로 불렀다. 키루스 대왕은 페르시아의 건국자로 지금으로 말하면 이란의 국부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왜 유대인은 그를 메시아로 칭송했을까?


<날개달린 형상> 신격화된 키루스왕을 상징하며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빌로니아어로 " 나, 키루스는 아르케메디아의 왕이다"라는 문장이 부조도어 있다.


창세기 11장에 바벨탑이 나오는데, 혹자는 이 탑을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공중정원으로 추정한다. 그만큼 신바빌로니아 제국은 고대 근동 지역의 패권을 흔들던 강대국이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1권에서,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 7권에서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몰락 과정이 나온다.


바빌론 강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네.


시편 137편에 신바빌로니아 제국에게 정복당한 유대인들이 바빌론 강가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원전 539년 키루스 대왕이 이 나라를 침공했다. 그는 노예 상태인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했다.



<키루스 실린더>, 영국 대영박물관 소장. 실린더의 길이는 22.5센티미터이고 원통의 폭은 10센티미터이다.


1879년 메소포타미아 유적지에서 럭비공만 한 크기의 타원형 원통 ‘키루스 실린더’가 발굴됐다. ‘키루스는 바빌로니아를 해방시켰으며, 모든 국가와 민족의 평화적 공존과 신앙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내용은 페르시아어가 아닌, 바빌로니아어로 쓰여 있었다. 키루스 왕은 제국의 붕괴를 슬퍼하던 바빌로니아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점령지의 언어로 그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키루스 실린더는 전쟁의 승리자가 갖추어야 할 군주의 거울이었다.


레토릭(수사학)은 효과적인 소통방식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리스 수사학자들은 연설에 세 가지 단계와 등급이 있다는 걸 알고 이를 이론화했다. 로고스는 명확한 논리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고, 에토스는 열정적이고 감동을 주는 연설, 파토스는 슬픔과 아픔을 공감하며 위로하고 격려하는 연설이다.


71 년 전,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깨끗한 어느 날 아침에, 죽음이 하늘로부터 내려왔고, 세계는 바뀌어 버렸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016년 히로시마 연설문은 고통을 위로하며 역사적 진실을 직시하게 다.


『키루스의 교육』은 지식보다 지혜를 강조하며 백성들과 고통을 나누는 동행의 리더십을 최고의 덕목으로 제시한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정의는 국가의 구성원들이 이미 정해져 있는 신분 계급의 덕목에 따라 행동하는 거였지만, 『키루스의 교육』에서 정의는 ‘권리의 평등’이었다. 모든 정의는 법에 근거해야 하며 법에 근거하지 않은 판단은 정의롭지않다. 법을 지키고 법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하는 것이 만고불변의 군주의 거울이다.


군주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지혜의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것은 행운에 기대지 않는 것이다. 뱀 같은 욕심을 버려야 하고, 족제비처럼 요령을 부려 문제를 회피하지 않아야 하며, 거북이의 게으름을 경계해야 한다.


남들이 모두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 때, 키루스는 “늘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에 대해 골몰했다. 299p


키루스가 남긴 마지막 군주의 거울은 그의 삶, 그 자체였다.


봉건 귀족 출신이지만 신흥 노동계급의 도전을 선제적으로 흡수한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신이 역사 속을 지나갈 때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라고 말했다. 훌륭한 리더는 레거시를 남긴다. 영어 ‘레거시(Legacy)’는 한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정치인이 남긴 이름? 유산?

독일인들은 아포리아일 때면 비스마르크의 레거시를 떠올린다. “비스마르크라면 어떻게 할까?”


"답답하다. 질식할 것만 같다. 창문을 열어라."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요한 23세는 교회의 곪은 부분을 도려내는  '회개와 쇄신'을 선포했다. 이후 전 세계 가톨릭 교회는 예배 의식을 각 나라에 맞게 토착화, 간소화하게 되었다. 교황의 의지는 교회의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모두가 사람이 원인이었다. 흥하고 망하고 제국을 지속시키고 변화하는 모두가.




강대국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 상식과 비상식을 넘나드는 진영 논리. 핵의 위협. 빈부, 연령, 성별, 환경의 갈등.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둘지 모르는 혼돈스러운 사회. 우리는 레거시를 떠올릴 믿을 만한 리더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 누구도 믿지 말고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야 하는 걸까? 우리는 어떻게 이 아포리아를 극복할까?


소크라테스처럼, 경계선이나 경계선 너머에 서 있는 주변인으로부터 새로운 통찰력이 나오는 법이다. 그러니 사방을 눈여겨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디에, 여태, 우리가 알지 못한 훌륭한 리더가 숨어 있지 않을까? 우리 스스로 경계선 밖에 서 있기도 해야 한다. 동굴 속에선 태양을 볼 수 없다.


“인간의 행복이란 덧없는 것임을 알기에 나는 큰 도시와 작은 도시의 운명을 똑같이 언급하려는 것이다.” 이 짧은 문장이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요약이다. 여기서 ‘도시’를 ‘나라’로 바꾼다 한들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개인과 유리된 나라란 존재하지 않는다. 군주의 첫 번째 임무는 선한 사람을 악한 인간의 횡포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너는 그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그들과 함께 슬퍼해라. 그들이 고통받고 있으면 도우려고 노력하고, 그들에게 안 좋은 일이 닥치지는 않을지 항상 염려하며, 실제로 닥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235p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Speculum regia, Cyropaedi)』김상근 지음, 21세기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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