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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국 끓이는 법
밤 단풍이 유난히 아름답다
by
제인
Oct 31. 2020
시월의 마지막 날 밤, 아파트 앞 생선구이 집에서
나는 남편과 소주를 반주삼아 저녁을 먹었다.
-요리를 제법 한데.
-그래?
낮에 만난 친구의 남편 이야기다. 친구는 남편이 아침에 콩나물 국을 끓였다고 내게 자랑했다.
퇴직 공무원인 친구의 남편은 일 년 전에
문화센터에서
요리를 배웠다.
그들은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아침에는 꼭 국이 있어야 한다. 콩나물 국, 북어 국, 떡국을 만들 줄 알아서 아예 아침을 그가 담당하기로 했다고 한다.
-배워서 하는 게 겨우 그거야?
남편이 은근히 무시한다.
실은 부러워서 그런다는 걸 나는 안다.
남편
의 요즘 관심사는 요리다. 기회가 되면 요리를 배우고 싶어 한다.
심드렁한 표정의 남편을 나는 놀리고 싶어 졌다.
-콩나물 국이 시시한 가보네. 그럼, 콩나물 국에 들어가는 게 뭔지 맞춰봐.
-흠… 마늘.
곰곰이 생각하더니 겨우 하나 말했다.
-그리고?
-음… 파가 조금 있어야 할 것 같아. 많이는 말고.
-어떻게 만들 거야?
-팔팔 끓는 물에 콩나물을 넣어야지. 시원하게.
이건
2 분 정도 숙고한 후 나온 대답이다.
-간은 뭐로 할 거야?
-간장.
-무슨 간장. 왜 간장, 조선간장?
-시원해야 하니까, 조선간장… 이겠지?
남편은 계속 시원하게 시원하게를 읊조리며 콩나물 국 한 냄비를 끓이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속으로 웃느라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남편이 뜬금없이 불쑥 물었다.
-동태 찌개에는 고추장을
넣나?
-갑자기 웬 동태
찌개? 넣기도,
안 넣기도 하는데 나는 안 넣는 편이야.
-그래. 된장도 조금 넣는 것 같아. 동태 찌개는 무조건 무만 얄팍하게 썰어 넣으면 돼. 예전에 그건 만들어 봤어. 그러고 보면 다 만들어 봤는데.
남편은 뭔가 생각하는 눈치였다.
순간 나는 남편이 말한 예전이 어느 때인지를 알아차렸다.
지난번 엄마 장례식을 치를 때 우리 가족은
밤마다 모여서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남편과 동생, 형부와 올케가 모여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남편은 형부랑 대학 동기다. 술 마시고 옆 자리 사람들과 싸움이 붙어서 경찰서 유치장에 들어간 일. 형이 와서 구해준 일. 70년대 중반으로 되
돌아가 신나게
이야기하던 남편의 목소리가 갑자기 가라앉았다.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제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남편은
대학에 입학한 후 이불 한 채를 짊어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형이 대학교 앞에 방을 얻어 살고 있었다. 그 방에서
형과 함께 지내며 대학을 다니면
됐다.
막상 와 보니, 형에겐 여자가 있었다. 형은 부모님 몰래 형수랑 동거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이 사실을 부모님께 알릴 수 없었다.
-군대 갈 때까지 단칸방에서 형이랑 형수랑 살았어. 내 대학 생활이 어땠겠어. 낭만? 그런 게 어딨어?
-세상에, 두 사람은 신혼이었을 텐데. 거기서 어떻게 살았어요?
올케가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나도 힘들었지만, 형수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3년을 단칸방에서 시동생이랑 같이 살았으니.
남편이 맞은편에 있는 친구이자 동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 아무한테도 이 이야기를 못했어. 늘 붙어 다니던 친구들에게도.
그 시절에 나는 친구들이랑 분위기 좋은 카페를 들락거렸다. 서클을 다녔고, 여행을 했고, 산에서 캠핑을 했다.
결혼 후 나는 가끔 남편을 이상하게 여겼다.
왜 남편은 기타를 칠 줄 모를까?
그 시절엔 누구나 기타 하나 정도는 들고 다녔는데.
쉬워 보이는 국이지만 나는 콩나물 국 끓이기가 만만치 않다. 자주 만들지 않아서인지 끓일 때마다 맛이 다르니 조리법을 제대로 아는 게 아니다.
-콩나물 꼬리 따느라 힘들었는데.
-왜 꼬리를 땄어? 귀찮게. 요즘은 그냥 끓이는데,
-전에는 주로 집에서 키웠잖아. 그러니 꼬리가 질기지. 지금처럼 속성으로 키우지 않아서 콩나물도 더디게 더디게 자랐지.
우리는 소주 한 병을 다 비웠다.
돌아오는 길 가로등
불빛이 몇 잎 남지 않은 붉은 나뭇잎을 비췄다. 우리는 멈춰 서서 유난히 아름답네, 하며 한참이나 바라봤다.
-더 추워지면 안 되는데. 지금이 딱 좋은데.
남편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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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차 주부. 읽고 쓰고 산책하며 일상을 관찰한다. 영화 보기, 요리하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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