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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Nov 01. 2020

2인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입원하는 날에는 1인실에 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내긴 편하지만, 병원비가 부담스럽다. 이번에는 첫날부터 2인실에 배정됐다. 잘된 일이었다. 병실에 들어가니 창가 쪽 침대에 먼저 입원한 여자가 누워 있었다. 병구완하는 남편이 간이침대에 기대 있다가 나를 보더니 얼른 몸을 일으켰다. 은근히 불편해진 나는 입구 쪽에 짐을 풀고 커튼으로 침대 주위를 꼼꼼하게 가렸다.


수술 전날 밤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자정부터 금식이니 병원에서 나온 저녁밥을 먹어도 된다.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옆 부부는 사이좋게 밥을 나누어 먹는 것 같았다. 남편 목소리가 활달하고 씩씩했다. 입원한 지 꽤 된 것 같은데.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고 나왔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가 황급히 들어갔다. 내가 나오기를 기다린 눈치였다. 남편도 그녀를 뒤따라 들어갔다. 여자는 이삼십 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더니, 그예 끙끙 앓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불편해할까 봐 침대에서 숨을 죽였다.


들리는 소리가 심상찮았다. 간호사가 열을 재더니 얼음 팩을 가져왔다. 그녀는 밤새 앓았다. 옆 침대에 누운 나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병실 화장실을 포기하고 밖에 있는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크게 불편하지는 않지만 잠을 잘 수 없으니 병실을 옮겨야 하나, 생각이 스쳐 갔다.


“괜찮으세요? 좀 어떠세요?”

걱정이 된 나는 다음 날 아침 커튼을 걷고 나와 그녀에게 물었다.


열이 내려 이제 조금 살만하다고, 여자는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무슨 수술을 하셨기에 이렇게 안 좋으세요.”

사람들은 모두 자기 기준으로 상대를 바라본다.


“류머티즘이에요.”

남편이 말하더니, 작은 소리로 덧붙였다.

“루푸스.”


눈가가 붉어 보였다.


입원한 지 보름째. 면역 질환이라 염증이 사방으로 옮겨 다닌다고 했다. 어쩐지 이비인후과, 피부과, 여러 의사가 드나들었다.


“저는 오늘 수술해요.” 하니까, 여자가 부러운 듯 말했다. “수술하는 분들은 모두 나아서 퇴원하시잖아요.”


입원하고 퇴원하는 사람을 그녀는 계속 지켜봤던 거였다. 내겐 힘든 일이었지만 그녀에겐  부러운 일이었다.


“화장실 편하게 쓰세요. 저는 바깥 화장실 쓰면 돼요. 저는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위로할 말이 없어진 나는 계속 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지인이 가져온 과일 바구니에 한라봉이 있었다. 두 개를 꺼내서 그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옆 창가에 올려놓았다. 병실에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음식에도 공기에도 냄새가 배어 있어서 오래 있으면 아프지 않은 사람도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병실에 돌아온 그녀가 창가에 놓인 샛노란 과일을 보더니, “여보, 나 한라봉 먹을래” 했다.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다음 날 아침 무심결에 커피 생각이 난다고 했더니, 그녀의 남편이 마시러 가는 길이라며 사다 주겠다 했다. 그녀가 샤워하고 나오자, 남편이 화장실 청소를 했다. 지켜보는 나는 아픈 사람도 병구완하는 남편도 안타깝기만 했다.


사흘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두 사람이 계속 화장실을 드나들었으니까. 그래도 첫날에는 커튼 속에 숨어 있었는데, 어느새 커튼을 걷고 나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느 틈에 우리는 아이들이 몇 살인지, 손자가 몇 명인지도 아는 사이가 됐다.


퇴원하는 날, 그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오려다 돌아서서 나는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남편은 천천히 한 음절씩 아내의 이름을 말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기도해 드릴게요.”

그 말 밖에는.



<톨릭신문, 명예기자 단상 2019년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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