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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Dec 08. 2020

신춘문예, 한 해의 결실

이제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구려


지난 11월에 나는 2021년 신춘문예에는 글을 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올해 들어 소설 습작을 거의 못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소설 쓰기 모임도 사라졌고, 배울 스승도 없었다. 매주 한 번 서울의 신문사 문화 센터를 다녀볼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부담스러웠다. 일 년을 책 읽고 브런치에 글 쓰며 보냈다. 그러니 신춘에 단편 소설을 낸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면서 달력에는 11월 중순부터 끊임없이 쓰기, 쓰기, 쓰기라 적어 놓았다.

11월 30일 마감이라 적어 놓은 건 무엇일까? 달력을 넘기니 12월이었다.


2일, 브런치를 서성이다 신춘문예에 응모했다는 분의 글을 읽었다. 신춘에 글 보내는 분이구나. 행간에서 그 마음을 느꼈다. 간절하고, 애틋하고, 손 닿지 않는 줄을 바라보는 것 같은 마음. 꿈과 희망. 다시 달력을 봤다. 4일에 ‘마감’이라 적혀 있었다. 이틀간 한 편 마무리할 수 있을까?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걸 나는 자연스러운 신호로 여긴다. 순응하고 따라간다. 작년에 써놓은 소설 폴더를 열었다.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는 부족한 글들. 여름에 어떤 친구가 내 글을 기억하고 있다 했는데. 그걸 보낼까?


-나 지금부터 글 쓰니 나를 방해하지 마시오.

남편에게 ‘나’를 두 번이나 넣어 선언했다.


-내가 언제 방해했냐?

나의 결기 어린 선언에 남편은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고양이와 회사원에 관한 이야기를 쓰며 나는 혼자서 웃고 이런 말을 할 때는 어떤 동작을 하지? 손으로 흉내도 내 본다. 아무도 안 보니 다행이다. 막히면 답답해서 아무 책이나 펼쳐 보고 커닝한다. 배경을 어떻게 하는 거야? 이렇게 풀어가는구나. 이 작가는 상황 설명이 없구나. 이래도 괜찮네. 이건 우리 부부 이야기인데 좀 웃기긴 하지만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꿈 이야기를 넣고 싶어. 이게 왜 이러냐고 물으면 어떡하지? 걱정 마. 평론가들이 숨어 있는 뜻을 다 찾아 줄 거야. 중얼중얼. 히죽히죽. 킬킬. 혹시 동생이 보고 샘플이 자기냐고 물으면 어떡하지? 걱정도 팔자셔. 당선 안 시켜주네요.


어느 신문사에 보낼 것인가. 글을 뽑는 건 신문사의 권리이지만, 글을 보내는 건 나의 권리이다.


각 신문사를 검색해 본다. 작년에 처음 응모했을 때 ‘나이’를 적으라는 신문사들을 보고 놀랐다.

왜 나이를 적으라 하지? 아예 우리 신문사는 40대 이상은 뽑지 않습니다, 그러지.


하지만 내가 신문사 입장이라도 이삼십 대 젊은 당선자가 나오면 좋을 것 같긴 하다. 앞 날이 창창하니까. 알게 뭐야. 김애란이나 이기호, 윤이형이 될지 누가 알아. 한강이 될지도 모르지. 으… 부커상을 타면, 우리 신문사의 신춘문예 출신입니다. 이렇게 광고도 낼 수 있고 말이지. 이렇게 삐딱한 생각을 하며 나는 ‘나의 권리’로 나이를 적으라 요구하는 신문사들을 과감히 퇴출시킨다.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데. 물정도 모르고. 그러면서 나이나 키에 제한을 두는 입사 시험의 문제점을 깨닫는다.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게 있는데.


3일, 선택된 신문사에 등기를 보냈다. 다음날 잘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4일, 다른 신문사에 실버타운 이야기를 보냈다. 힌트를 주자면 여기엔 ‘코니’라는 약간 기괴한 여자가 나온다. 나중에 내가 들어가 살고 싶은 실버타운 이야기다.


주말이 되자 글 한 편이 머리에 맴맴 돌았다. 목요일까지 도착하면 되는 신문사가 몇 개 있었다. 소설 한 편을 끌어안았다. 쓰다가 지쳐서 던져두고 후무스도 만들고, 영화도 한 편 봤다. 월요일이 되자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반나절 들여다보고 있으면 오후에는 쉬어야 했다. 이 소설의 제목은… 나도 가끔 비밀을 가지고 싶다. 이건 쓰면서 정말 재미있었다.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게 ‘시점’이다. 쓰다가 혼돈스러워 덮어둔 글이었는데 자연스레 정리가 됐다. 보내는 날  오전에 스토리가 바뀌었다. 저절로 그리 됐다. 훨씬 나았다. 8일 오후, 프린트해서 보냈다. 그리고 소설 폴더를 덮었다. 내 권리는 모두 행사했으니 이제는 당신들 차례요. 마음대로 하시구려, 하면서.


며칠 재미있었다. 물론 힘들긴 했다. 마치고 나니 시원해 날아갈 것 같다.

신춘문예 응모는 한 해의 결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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