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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May 24. 2020

34세 비혼주의자와 대화하기

사랑에도 거리와 근접성이 필요하다


“너, 내 글 읽지 마.”

“어머니도 제 글 읽지 마세요.”


우린 이렇게 대화한다.


그럴 수밖에. 우린 둘 다 브런치 작가다. 글의 짬밥으로 치면 내가 먼저지만, 브런치에선 아들이 선배다.

브런치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아들 때문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아들의 친구의 엄마 덕분이다. 산책길에서 만난 그녀가 아들이 브런치에 글 쓴다는 걸 알려줬다. 브런치라….

예전에 듣긴 했다. 들어와 몇 편 읽기도 했고.


그날 뜨악한 느낌이 든 건 아들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거였다. 녀석이 글을 쓴다니.


집에 돌아오자마자 재빨리 아들의 글을 찾기 시작했다. 혹시 다녀간 티가 날까 봐 브런치 앱도 깔지 않았다. 삼십 분쯤 돌아다니다가 찾았다. 찾는 팁을 준 건 몇 권의 책이 포개져 있는 한 장의 사진이었다. 사진이 말했다. 여기가 아들의 방이에요.


글을 읽다 보니 속으로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많이 아팠는데 집에 알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 모른 척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가 자기 글을  읽는다면 좋아할 아들이 어디 있겠는가.

대부분 가족이 그렇듯 비밀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지켜지지 않는다.

 



혼인 적령기인 아들 때문에 시달린다. 시부모님도 남편도 나를 재촉한다. 다들 난리다. 비혼이라니! 어떻게 생각하면 남의 여자에게 주느니 다정한 아들 하나 데리고 있어도 괜찮을 듯싶은데. 아흔다섯을 바라보는 아버님에겐 턱도 없는 이야기지만.


지난번에 지인이 아가씨를 소개하려고 아들에게 전화했다.

“고맙습니다. 괜찮습니다.”


두 번 다시 말도 못 꺼냈다는 지인에게 나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보름 전, 아들이 집에 내려왔다. 보통 이틀 정도 있다 가는데, 이번엔 사나흘 여유가 있었다. 난, 3박 4일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들과 난 책 읽기를 좋아한다.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건 굉장히 큰 기쁨이다. 어버이날에도 아들은 책을 선물했다.


“내년 어버이날엔 색다른 선물을 받고 싶어.”

“어머니, 일 년이나 남았는데 뭐가 그리 받고 싶으세요.”

“며느리.”


내가 생각해도 너무 유치했다.


아들은 긴 한숨만 쉬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 잡진 앉았다. 아들의 성격을 아니까. 다음날엔 같이 산책하자고 꼬드겼다. 협박해 보려고.


“대구 삼촌 알지? 혼자되니까 할머니 모시잖아. 너도 혼자 살면 나중에 우리 부양해야 될지 몰라.”

“상황이 그러면 할 수 없지, 뭐.”

녀석은 넘어가지 않았다.


말이 되는가? 부모 부양하기 싫으면 결혼하라니.

잔머리 굴리는 내가 싫었다.

 

아들이 영원히 혼자 산다는 생각을 하면 섬뜩하다.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울해진다. 예쁜 아기도 안아보고 싶은데.





남편은 아들에게 별말하지 않는다. 뒤에서 나를 은근히 볶을 뿐.

"낮에 이야기해 봤어?"

늘 이런 식이다. 관심은 많은데 포현이 서툴다.


집에 들어오는 아들에게 " 왔니?" 한 마디 하고는,  가는 날 저녁 시간에야 " 이제 결혼해야지." 다.


 남편이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사흘 내내 엄마한테 시달렸는데, 이제 아빠까지? 혹시 짜증이라도 내는 건 아닐까 아들 눈치를 다. 명절에 잔소리 듣기 싫어 집에 내려가기 싫다던 그녀들이 떠올랐다.


의외로 아들은 선선히 대답했다.

"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이번 달만 해도 청첩장이 두 건이다. 내가 결혼식에 가고 싶을까?






아들은 대학을 가면서 집을 떠났다. 14년 전이다. 그러니 우린 주고받을 대화가 마땅찮다. 일 년에 두세 번 만나는 데 뭐 그리 할 말이 있겠는가. 내려오면 올라가기 바쁘니, 그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마치느라 대화에는 윤기가 없다. 사랑에도 거리와 근접성이 필요하다고 누가 말했는데.


아들은 자기의 모든 걸 보여주기 싫어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아들에겐 엄마일 뿐이지만, 나도 다양한 얼굴을 가진 한 인간이니 아들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모스크바의 신사』(에이모 토울스, 현대문학)에 알록달록한 단추를 분류해 각 주머니에 나눠 담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단추를 섞어서 한 주머니에 담으면 무슨 재미인가. 우린 그렇게 각자 브런치의 한 구석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장가는 어떻게 보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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